전체메뉴
유성호 법의학자 “유한한 삶 받아들이고 계획적으로 살아야 건강”
[광주일보 8기 리더스아카데미 강연-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생각한다’]
20여년간 2천여건 부검…법 적용에 필요한 의학지식 제공하는 응용 학문
노화 어떻게 겪을지 고민…흡연·과식 피하는 등 적극적 건강관리 해야
2020년 09월 24일(목) 05:00
유성호 법의학자
‘죽은 자가 산자를 가르친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다양한 사건에 얽힌 의문을 밝혀온 법의학자 서울대학교 유성호 교수가 지난 22일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열린 ‘제8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강연했다. 유 교수는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의 저자이며 TV 프로그램 tvN ‘어쩌다 어른’,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생각한다’를 주제로 법의학자가 생각하는 죽음과 삶을 이야기했다.

자신을 ‘죽은 자에게서 삶을 배우는 법의학자’라고 소개한 그는 촉탁법의관을 겸임하고 있으며, 20년간 약 2000여건의 부검을 진행했다.

그는 “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졸업반 때 스승이신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법의학에 매료됐다”며 “그 당시 ‘누군가가 이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해보자’라는 생각에 법의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법의학자를 셜록홈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싸인’, ‘검법남녀’ 등에 등장하는 법의학자들은 시신에서 단서를 찾아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으로 나와요. 하지만 실제로 사건 해결 보다는 경찰, 검찰 등이 의뢰한 시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유 교수는 “생후 27개월 여자아이가 혼수상태로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적이 있었다”며 “아이의 엄마는 딸이 식용유를 밟고 넘어졌다고 주장하며 의식이 없는 아이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가 화장을 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화장했기 때문에 부검을 할 수 없었지만 병원 자료를 보니 사망 원인이 머리에서 발생한 출혈을 일컫는 경막하출혈이었어요. 경막하출혈은 키 1m 이하 어린이들이 넘어져서는 발생하기 어려워요. 게다가 왼쪽 뇌에서 출혈흔 2개나 발견됐고 이 사건을 방송에서도 다뤘어요.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어서 결국 검찰에서 수사에 착수했고, 법원에서는 뇌출혈이 발생한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유기치사 등의 법률을 적용해 친모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유성호 교수가 지난 22일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열린 ‘제8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생각한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유 교수는 순천에서 부패한 채 발견된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유병언을 처음 부검한 건 순천에 있는 병원 의사선생님이었어요. 노숙자가 아니라 유병언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 참 지난 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아직도 유병언의 죽음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병언은 숨졌습니다. 시신 자체가 엄청나게 부패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밝히지는 못했죠.”

유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가 약 5140만 명(2018년 기준)인데 1년에 30만 명 정도가 사망한다며 이중 살인 등 타살은 400명이 채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퇴한 법의학자를 제외하면 현재 활동하는 법의학자는 40여 명 정도인데 이들은 1년에 7000~8000건, 한 사람 당 150~200건 정도 부검을 한다고 말했다. 살인 이외에도 갑작스런 죽음,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 의료사고 등을 다룬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의학이란 법과 의학, 법률 적용에 필요한 의학적 지식을 제공하고 연구하는 응용 학문이라며, 이밖에도 치아를 이용한 법치의학, 뼈를 연구하는 법의인류학, 곤충을 이용하는 법의곤충학 등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유 교수는 특히 사람이 죽으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파리인데 법의곤충학에서는 이를 연구, 부패한 시신의 정확한 사망 시각을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망원인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국가적 측면에서는 국민의 사망 이유가 ‘자살’이라면 국가는 자살예방을 위해 세금을 써야 해요. 또 국민 사망원인 1위가 폐암인데 세금을 폐암을 유발하는 금연 등에 써야한다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살펴보고 유전력, 가족력을 따져 개인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예를들면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 유전자를 일찍 발견하고 유방암 발병을 막기 위해 유방절제술을 했죠.”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더 깊이 죽음을 숙고하고, 준비함으로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흡연 등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과 이별해야해요. 나이가 들어가면 일상생활의 습관을 바꾸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하죠.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노화에 관한 지식을 쌓고 유한한 삶을 인정하며 남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계획을 세워야 사는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요.”

한편, 리더스아카데미 다음 강연은 오는 10월8일 진행된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가 고향 함평에 지은 호접몽가에서 특강한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