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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 먹는 음식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2020년 09월 09일(수) 00:00
[김석기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장]
지난 3월의 어느 날 이었다. 지금은 다소 가격이 회복됐지만 국산 돼지고기 가격이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안 좋았던 시기였다. 당시 코로나19의 급증으로 어려움에 처한 회사 인근 식당들을 번갈아가며 이용하던 중 두루치기를 맛있게 하는 곳이 있어 찾아갔다. 두루치기를 먹고 난 후 원산지 표시판을 확인하니 의외로 돼지고기가 외국산이었다. 국산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하다 보니 다양한 소비 촉진 행사도 병행하고 있었던 때라 사장님께 이렇게 권유했다. “음식은 참 맛있게 먹었는데 지금 돼지고기 가격도 저렴하고 물량도 충분하니 국내산으로 대체하시면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나의 제안은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거절당했다.

지난 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서울 음식점 330곳의 농축산물 소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지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전체적인 패턴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배추김치를 직접 제조한다는 비율은 38.3%, 완제품을 구매한다는 비율은 61.7%였다. 완제품을 구매하는 곳 중 87.4%가 중국산 배추김치를 구매한다고 하니 전체의 54%가 중국산 배추김치를 구매하는 셈이다. 깐 양파(55.0%), 다진 마늘(45.2%), 고춧가루(45.1%), 깐 마늘(45.1%)도 외국산 비율이 높았다.

대량으로 많은 식재료를 안정적이고 꾸준히 공급받아 비용을 절감해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요식업체의 애로 사항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충분히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그들의 욕구도 충족시키며 식당도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음식점이 국내산 농축산물의 사용 비율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선택권을 한 번쯤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 리처드 탈러 교수는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으로 ‘넛지’(Nudge)라는 개념을 활용한 저축 플랜을 설계해 빚더미에 앉은 미국을 구한 경제학자로 평가받는다. 넛지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경우, 조리된 요리의 배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좀 더 건강한 음식 섭취라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수산물을 직접 제공 또는 가공하는 음식점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정한 거래를 유도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배달 음식에 대해서도 원산지를 반드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배달 음식을 시켜봤다면 영수증 하단에 인쇄된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다. 원산지를 표시하는 품목을 농축산물에만 국한해서 살펴보면 쌀(밥·죽·누룽지), 배추김치(배추·고춧가루), 콩(두부·콩비지·콩국수), 소·돼지·닭·오리·염소 고기가 해당된다.

필자는 국민들께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인 ‘넛지’를 식당을 직접 방문하거나 배달해서 먹는 경우에 적용해 봤으면 한다. 가족 간에 외식을 하고 싶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로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서 먹을 때 한 번쯤 원산지 표시를 자세히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 혹시 외국산 농축산물을 사용하고 있으면 국내산으로 대체해 사용할 수 없는지 물어봐 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서두에 개인적인 경험을 말한 이유도 모두가 한 번쯤 동참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꺼내 본 것이다. 국산 농축산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럿이 모이면 음식점 원재료의 구매 행태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국내산 농축산물 애용이 높아지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식량 자급률(2018년 기준 46.7%)이 높아지고 식량 안보의 위기를 극복할 힘이 생긴다. 지난 수십 년간 묵묵히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환경보호 등 공익적 가치를 유지해 온 농업인에게도 든든한 힘이 될 뿐만 아니라 갈수록 줄어드는 경지 면적도 유지할 수 있다. “이 음식의 원산지는 어디에요?”라는 간단한 물음은 농업을 유지하고 생산 기반이 튼튼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