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휴전선 위에 떠도는 문학적 망령의 해원
2020년 08월 11일(화) 00:00
김성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글쓰기 교수
코로나19 사태와 수해 등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연일 비명을 지른다. 한반도의 남북 관계는 평화의 길을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강제 휴식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읽은 김연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이 가슴을 후려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우난골족’으로 유명한 시인 백석의 북에서의 삶과 고뇌를 그린 장편이다. 해방 전 남북을 아우르는 애송 시인 소월의 뒤를 이어 식민지 백성의 애환을 민요적 절창에 담아 이름을 떨쳤으나, 북에서는 ‘실패한 시인’으로 쓸쓸하게 스러져 간 사연을 담았다.

주인공 기행(백석의 본명)은 당 정책에 맞는 선전시를 쓰라는 강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러시아문학 번역으로 간신히 존재를 증명한다. 1956년의 일시적 해빙기에 ‘동화시’ 논쟁에서 잠시 본심을 드러냈다가 부르주아 미학 사상의 잔재로 몰려 ‘삼수갑산’의 그 삼수 산골짝에서 쓸쓸히 여생을 마친다.

안도현 시인의 스테디셀러 ‘백석 평전’과 함께 읽었지만, 평전의 절반도 안 되는 소설을 읽는 데 시간은 배가 넘게 걸렸다. 소설의 플래시백과 빈틈 채워 읽기가 영 편하지 않았다. 1950년대 북 문단 정황을 머리로는 소상히 알고 있었지만, 이 불운한 시인의 한과 슬픔을 가슴에 품고 원을 풀어내는 일이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의도적으로 백석을 ‘기행’ ‘흰돌’로, 한설야를 ‘병도’로, 이태준을 ‘상허’로 칭한 것조차 눈에 밟힌다. 압권은 월북 만담가(개그맨) 신불출을 시종 ‘신안남’으로 칭하는 대목이다. 당 문예정책에 따라 체제를 선전하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것이 ‘신나지 않음’으로 읽히는 것이다.

백석·설야·상허를 비롯해 월북 작가는 한동안 금기의 대상이었다. 남북의 역대 권력은 ‘월북·월남’한 ‘정치적·이념적 타자’인 작가 예술가를 ‘빨갱이, 부르주아 반동’으로 금지하였다. 그나마 남에선 ‘납·월북 작가 예술인 해금 조치’(1988)로 금제(禁制)가 풀려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 완고하게 남은 반공·냉전 이념 때문에 이들 중 소수만 교과서, 문학전집, 문학사에 들어왔다.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은 학자들에게만 복권·복원되었을 따름이다.

가령 김소월이 1934년 자살하지 않고 해방 후까지 생존해서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의 고향 집인 평북 정주에 머물러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꼼짝없이 월북 시인으로 몰려 우리는 국민 애송시 ‘진달래꽃’은커녕 그의 존재조차 모를 뻔했다. 이미 그런 예로 이제는 민족 대표 시인이 된 이용악과 백석이 있지 않은가. 실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월북한 것이 아니라 집이 북쪽이라서 재북·귀북(在北·歸北)인데도 오랫동안 금기시되지 않았던가.

이제 ‘월북’이란 공안 통치적 발상의 낙인찍기를 지워 버릴 순 없을까. 월북은 악이고 월남은 선이며, 월북은 범죄요 월남은 귀순(북에선 탈북을 패륜시한다)으로 부르는 자체가 중세적 이분법이다. 이런 식의 반문화적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납북자는 피해자이고 월북자는 범죄자이며 재북자는 미필적 가해자란 공안적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월북·재북은 월남·재남의 거울이다. 그들 모두 분단과 냉전의 피해자이며 문화적 시민권자라고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납·월북’에서 ‘재·월북’으로, 다시 ‘피해자 복권’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자. 그러면 공안 통치적 배제와 숙청이라는 ‘뺄셈의 문학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탈냉전·평화 체제를 지향하는 ‘통합과 포용의 문화사’로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백석뿐만 아니라 임화, 김남천, 이원조, 서만일 등 남북에서 지워진 작가의 신원·해원(伸원·解원)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적 통합과 통일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관이 크게 달라진 지구촌에서 남북 관계도 이제 20세기 냉전시대에 머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