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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진도에서 숨진 동학군 지도자 유골 돌려달라 했지만…
“연고 근거 부족” 전주시 상대 항소심도 패소
2020년 07월 31일(금) 00:00
진도군이 애초 일본으로부터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돌려 받은 동학군 지도자의 유골을 되돌려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법원은 유골에 대한 연고자 권한을 내세운 진도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민사 1부는 진도군이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상대로 제기한 ‘유골 인도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진도군은 126년 전 진도에서 효수당한 무명의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의 유골을 전주에 안장하려는 전주시 계획에 반발, 지난해 연고를 들어 유골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냈었다.

진도군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 따라 ‘사망하기 전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으로 연고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며 소송을 냈었다. ‘진도에서 출생하고 진도에서 사망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유골’이라며 유골의 신원을 밝혀주고 유가족에게 관리, 안장에 관한 권리를 넘겨주는 데 있어 전주시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보다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게 진도군 주장이었다. 타향인 전주에 안장되는 것보다 고향인 진도군에 안장되는 게 사회통념에 부합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유골을 인도하라고 주장했다.

이 유골은 동학농민혁명 당시인 1894년 진도에서 일본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농민군 지도자의 머리뼈로 추정되는데, 1906년 목포면화시험장 기사였던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됐고 90년이 지난 뒤인 1995년 7월 25일 북해도대 문학부 인류학교실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유골 표면 및 첨부된 문서에는 ‘전라남도 진도 동학당 수괴자’라고 적혀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이후 일본측과 협의를 거쳐 1996년 유골을 반환받았지만 유전자 감식 기술로도 후손을 밝혀내지 못한데다, 안장할 곳을 찾지 못하면서 정읍 황토재기념관을 거쳐 2002년께 전주 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왔다.

기념사업회는 또 지난 2014년 12월 전주시와 협의, 전주 완산전투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진도군의 반대로 유골 화장 및 봉안식이 이뤄지지 않았다. 유골은 지난해 전주 완산공원 내 추모공간(녹두관)에 안장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기념사업회 손을 들어줬다. 장사법에 따라 ‘사망하기 전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 장으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연고자로서 권한이 있다’는 진도군 주장은 ‘이유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원심대로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진도에서 출생한 유골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유족 명예를 회복하는데 있어 기념사업회보다 더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념사업회가 해당 유골의 점유자 내지 장사법에 따른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유골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1심 판단도 그대로 유지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