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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2020년 07월 23일(목) 00:00
뉴욕의 공원에서 어느 거지가 ‘나는 앞을 못 봐요’(I Am Blind)라고 적힌 팻말을 건 채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팻말의 글을 이렇게 바꿔 주었다. “곧 봄이 찾아오지만 나는 봄을 볼 수 없다오,”(Spring is coming soon. But I can‘t see it) 이후 놀랍게도 사람들의 적선이 이어졌다. 그 남자는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불톤(1896~1966)이었다.

하지만 불톤은 그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시인 푸시킨(1799~1837)을 흉내 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푸시킨 역시 어느 날 모스크바 광장에서 걸인의 팻말에 이렇게 써 준 적이 있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그렇다면 이것은 그의 창작이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동시대 영국의 시인인 셀리(1792~1822)의 시에 이런 구절이 보이니까.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수 있으랴?”(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오늘 갑자기 여러 시인을 들먹거리고 특히 푸시킨을 언급하는 것은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푸시킨도 역병(疫病)을 경험한 적이 있다. 1830년 콜레라 대유행으로 모스크바는 봉쇄되었고, 시인은 석 달간 작은 영지에서 자가 격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새옹지마(塞翁之馬)였을까. 푸시킨은 3개월의 완벽한 고립 속에서, 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이 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등 여러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푸시킨도 역병에 갇혔지만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은 우리에게 저 유명한 시(詩)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작가로도 친숙하다. 그 옛날 ‘바리캉’(bariquand, 프랑스어)으로 머리를 깎던 어린 시절 이발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었던 시. 밀레의 ‘만종’ 같은 복제된 명화와 함께 걸려 있던, 한때 전국의 이발소를 평정했던 바로 그 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푸시킨은 스물여섯 살 되던 해, 이웃에 살던 열다섯 살짜리 소녀에게 이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노여움을 참지 못해 일찍 생을 마감했다. 아내와의 염문에 휩싸인 사내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그때 얻은 상처로 일찍 죽은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간다’고 시인은 노래했건만, 지금 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날들은 금방 지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 코로나가 발생한 지도 이미 6개월을 넘겼다. 사람들은 마음 놓고 외식 한 번 하지 못한 채 하릴없이 집안에 갇혔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이런 세상이 오리라 그 누가 알았으랴.

지난 주말에는 부모님을 일주일마다 찾아뵙는 ‘주례 행사’도 생략해야 했다, 바이러스가 드디어 우리 동네까지 침범했다는 소식에 혹시 몰라 조심한 것이다. “이럴 땐 서로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지야.” 구순(九旬)을 넘긴 아버님은 짐짓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엔 ‘힘아리’가 없는 듯 느껴졌다. 아, 코로나가 부모 자식 간도 갈라놓는구나.

코로나 청정지역 광주가 어쩌다 지금은 이토록 위험지대가 된 것일까. 200명이 채 못 되는데도 마치 난리가 난 것 같은 느낌인데, 70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온 대구 사람들은 얼마나 징했을까 싶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투란도트가 낸 수수께끼의 정답이기도 한 ‘이것’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 것.’-바로 ‘희망’이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괴로운 마음에 대고 매 시간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미국 시인 랜터 윌슨 스미스(1856~1939)의 시다.

이 시에 나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는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로도 유명하다. 반지 세공사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 새겨 넣었다는, 승승장구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며 절망에 빠졌을 때도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글귀. 그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도 딱 어울리는 듯하다.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졌다 해서 마음을 놓지도 말고, 역병이 또다시 창궐한다 해도 참고 견디라는 말 아닌가.

그럼에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늘 도서관에서 소일했던 한 선배가 최근 문자를 보내왔다. 많은 공공시설이 휴관하는 바람에 날마다 집에서 보내자니 너무 답답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시대 공공도서관의 사회적 책임’(임석재 한국연구재단 선임연구원)이라는 글을 읽어 본 후 가공 재생산이 가능할지 검토해 보라는 부탁도 곁들이는 것이었다.



언젠간 가겠지 답답한 이 세월



그래서 찾아 읽어 보았더니 ‘공공도서관의 휴관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과연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를 묻는 내용이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면 안 되니 문을 닫고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안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또 다른 형태의 소극행정 또는 기피행정은 아닐까 통렬히 묻는 내용이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다행히 이번 주부터 수도권 공공시설이 문을 열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찾아보니 훨씬 이전에 부분 개관을 한 곳도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도서관으로, 이곳에서는 열람실도 이용할 수 있었다. 대신 전체 350석 중 109석만 착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탄력적인 운영. 바로 이게 ‘공공’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도서관의 존재 이유 아닐까. 그러나 이는 일개 도서관장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닐 테고, 아마도 해당 자치단체장의 협조와 결단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우리 지역의 도서관·박물관·미술관 혹은 5·18기록관 같은 곳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코로나로 인해 갇힌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창의적인 생각과 정책을 내놓는 그런 공무원을 만나고 싶다.

그나저나 하루하루가 참 힘들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생활은 엉망이 됐다. 괴로운 나날들이다. 그래도 이 또한 언젠간 지나갈 것이다.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푸시킨의 시 구절과도 일맥상통하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혹독하게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다만 지나가는 한 줄기 소나기와 같기를! 묵묵히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극복을 위해 애쓰시는 수많은 의료진에 한없는 존경을 표하면서.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