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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 문화가 되다
2020년 07월 22일(수) 00:00
80년 대 후반,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꼭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광주 충장로 5가에 자리한 한복점 ‘부영상회’였다. 문화부 초년 기자 시절, 한복기사는 명절 특집 기획의 단골 아이템이었다. 장소에 어울리는 한복 차림에서 부터 고름 매는 법 등을 지면에 소개하려면 한복연구가의 조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지만 당시는 신문이 그 ‘역할’을 대신하던 때였다.

지난 1970년 충장로에 문을 연 부영상회는 수십 여개의 한복집 가운데 가장 번창했던 곳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아한 인상의 박혜순(한복연구가)씨가 취재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박씨는 남편 최영권씨와 함께 시어머니의 가업을 이어 받아 한복집을 운영했다. 각양각색의 원단들이 벽면을 빼곡히 채운 가게에는 신랑신부들의 결혼예복에서부터 아이들의 색동저고리까지 ‘때깔좋은’ 한복들이 전시돼 있었다. 삭막한 일반 사무실에서는 느끼기 힘든 ‘화사한’ 분위기에 매료돼 즐겁게 취재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부영상회를 찾을 일이 없어지면서 추억속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며칠 전, 근 30년 만에 부영상회 소식을 들었다. (사)충장상인회가 충장로를 지켜온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충장로 오래된 가게’(임인자·황지운 著)에서 박 씨 부부의 근황을 접하게 된 것.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착잡하면서도 아쉬움이 밀려 들었다. 88서울올림픽 무렵, 70여 곳이 성업중이었던 충장로 한복의 거리가 절반에 가까운 40개만 남아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로 부터 한복집을 물려 받은 후 상호를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부유할 ‘부’(富)에 길 ‘영’(永)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보통 영화로울 ‘영’(塋)을 많이 쓰는데, 영원할 ‘영’이라고 지었어요. 저와 고객들이 오래오래 부자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최영권 대표)

이름 덕분일까. 부영상회는 강산이 서너번 바뀌는 동안 한복집들의 흥망성쇠를 곁에서 지켜 보며 충장로의 토박이를 자처하고 있다.

어디 부영상회 뿐이랴.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하던 ‘남양통닭’, 취업후 첫 양복을 맞췄던 ‘전병원 양복점’, 서민들의 ‘발’이 된 ‘노틀담 & 바이슨’까지 책에는 58개의 오래된 가게와 주인장들의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에는 충장로를 지켜온 상인들의 열정이 있었다. 지난 2018년 충장로 5가 번영회를 맡은 전병원 회장(대한민국 명장)이 충장로 역사를 기록하고 오래된 가게를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동판 사업을 동구청과 충장상인회에 제안하게 계기가 됐다.

무릇, 오래된 가게는 그 자체가 유산이자 문화다. 현재 광주에는 충장로를 비롯해 30년 이상된 160여 개의 가게가 세파에 맞서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브랜드로 키우는 건 이제 지역의 몫이다. 오래된 가게가 100년 이상 ‘오래가게’ 지혜를 모으자.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