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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아리를 도려내듯이 오형록 지음
2020년 06월 05일(금) 00:00
“정말 죽을 만큼 힘들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글의 힘이었다.”

해남 출신 ‘농부 시인’ 오형록의 말이다. 최근 네 번째 시집 ‘희아리를 도려내듯이’(문학들)를 펴낸 시인은 고향 해남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부다. 어쩌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일은, 시의 소재를 찾고 이를 묘사하는 시작(詩作)의 그것과 닮았다.

고추, 오이 등 작물의 생태에서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을 발견하는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렇게 삶을 반성하고 미래를 꿈꾸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특히 얼룩진 상한 고추를 일컫는 ‘희아리’를 표제작으로 삼은 것은 농부 시인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작품 속 농사의 현장감은 여느 시인의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를 환기한다.

“겨울잠을 즐기는 관리기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일 년 농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나긋나긋 말해 주었다// 아직 숨을 몰아쉬는/ 트랙터가 다가와 말했다/ 여보게 친구 이제 자네 차례야// 목구멍에 기름칠하라며/ 텁텁한 막걸리 한 잔을 따랐다/ 화색이 만발한 관리기가/ 방긋 웃으며 일어섰다”

위의 시 ‘전문가’는 농기계마저 의인화한 작품이다. 시인이 얼마나 농사를 진정으로 짓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동심과 유머를 자아내는 작품은 농사에 대한 생명의식과 아울러 사물의 존재까지 아우르는 품이 넓은 시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허형만 시인은 “농부 시인으로서 우주와 한 몸임을 알고 있기에 그의 생명 사상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고 평한다.

한편 오 시인은 2014년 계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붉은 심장의 옹아리’, ‘오늘밤엔 달도 없습니다’, ‘꼭지 따던 날’을 펴냈다. <문학들·1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