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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는 어쩌다 섬이 되었을까
2020년 05월 28일(목) 00:00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지난주 토요일 봉하마을에서 엄수됐다. 이날은 노 전 대통령 기일(忌日)이었다. 그가 홀연히 떠난 지 어느덧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는 세월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추도식에 참석한 이들은 저마다 ‘노무현 정신’을 기렸다.

그들이 말하는 ‘노무현 정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반칙과 특권으로 점철된 기득권 문화를 깨부수고, 원칙과 신뢰의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더하자면 ‘지역주의 타파’를 들 수 있겠다. 그것은 ‘노무현 정신’의 고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생전에 그가 텃밭을 버리고 스스로를 험지와 사지로 몰아넣었던 것도 다 그 때문 아니었던가.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지만 수없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도 역사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생각해 보면 ‘바보 노무현’은 염치를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알았다. 그가 파렴치한 정치인이었다면 어찌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마지막 선택을 했을 것인가. 그리고 11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라며 그가 그토록 타파하고자 했던 지역주의는 어느 정도나 극복됐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지역주의 망국병이라는데



지역주의란 ‘같은 지방 출신자끼리 동아리를 지어 다른 지방 출신자들을 배척, 비난하는 사회 병리 현상’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멀리 고려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다. 태조 왕건(王建)이 몸소 지은 유훈(遺訓)인 ‘훈요십조’(訓要十條)가 그것이다.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한 열 가지 조항 중 그 여덟 번째에서 왕은 이렇게 말한다.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외(外)의 산 형세가 모두 본주(本主)를 배역(背逆)해 인심 또한 그러하니……” 태조 왕건은 고구려·백제권 유민들의 힘을 합하여 신라를 무너뜨렸으나, 신검(神劍)의 끈질긴 저항에 감정을 품고 백제권 유민에 대하여 차별의 굴레를 씌운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지역 의식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 ‘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가 정치에 악용된 것은 박정희 시대 때부터였다. 1963년 전라도 농촌의 몰표에 힘입어 당선될 수 있었던 그는 70년대 들어 선거가 불리해지자 온갖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이와 관련 언젠가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이효상(1906∼1989)은 지역감정 악용의 비조(鼻祖)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1971년 7대 대선 당시. 공화당의 이효상 국회의장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이효상이 지역감정 조장의 효시(嚆矢)라면 김기춘은 그 종결자(終結者)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맞붙은 1992년 14대 대선 당시.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비밀 회동이 열린다. 김기춘을 비롯한 부산의 각 기관장들이 다 모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다. 경남 출신과 경북 출신 가리지 말고 뭉치자는 거였다.”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인용했지만, 이처럼 정치인들이 악용한 지역감정은 이후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마저도 ‘지역감정야말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망국병’이라는 인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 사회에 깊숙이 똬리를 틀었던 지역주의는 지금 어느 정도나 극복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도 재미있는 글이 하나 있는데, 지난 총선 직후 어느 시인이 쓴 것이다. 내용은 “지역주의, 오직 영남 TK에만 있다. 착각하지 마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호남 똑같은 지역주의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영남 사람 당신들 착각이다. 사실만 비교해 준다. 영남은(거기서 소신 투표하신 시민들께 죄송하다는 전제로) 지역주의 맞다. ‘우리가 남이가?’ 여기서 한 걸음도 못 나갔다. 그나마 경남·부산에서 소신 투표가 반짝하고 빛났을 뿐이다. 그럼 호남은? 대개 지역주의를 주장하고 개탄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호남이 영남보다 더 압도적인 몰표를 줬는데 지역주의가 아니라고?’ 맞다. 분명히 말하는데 호남의 몰표는 지역주의의 결과물이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는 20대 총선에서 호남이 민주당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안철수 신당을 지지했던 일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영남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TK처럼 ‘묻지 마 몰표’를 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남원에서 낙하산공천을 용서하지 않은 일, 목포의 박지원까지 그동안 호남을 대표해 왔던 유명 정치인들을 모조리 떨어뜨린 일 등. 이는 TK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민의라 했다.



어느 시인의 영남 비판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런 글을 올리면 꼭 묻는 사람 있다. 너 호남 출신이냐? 내 어머니 강원도(화천), 내 아버지 서울(영등포) 사람이고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다.”

호남 출신도 아니면서 이런 글을 써 주다니 고맙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 시인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수십 년 동안 몰표 찍으며 변하지 않는 호남을 두고 무슨 얘긴지…”라는 댓글도 보인다.

그나저나 나는 지난 총선의 영남 표심을 분석해 볼 때 지역주의가 많이 완화됐다고 느끼는 편이다. 민주당은 대구 지역구 12곳에 후보를 내 이 중 11명이 20% 이상 득표했는데, 4년 전엔 4명뿐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부산(18곳)의 경우 40% 이상 득표한 민주당 후보가 16명으로, 20대 총선(8명)의 두 배가 됐다는 근거도 댈 수 있다. 울산의 정당 투표율을 보면 범여권이 미래한국당보다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쯤 되고 보면 경상도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카토그램(실제 면적과 관계없이 당선자 수만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지도)으로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남 지역은 거의 핑크빛으로, 호남을 비롯한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파란빛으로 물들었다. 출렁이는 푸른 물결 속에 경상도만이 ‘붉은 섬’으로 남은 것이다.

과거엔 전라도가 외로운 섬일 때가 많았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경상도가 섬이 됐다. ‘경상도 공화국’. 아, 이런 날도 오는구나.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사람도 그렇고 세상도 그렇다. 그러니 공룡이 된 여당은 늘 가슴에 새겨야겠다. 세상은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며,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