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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 항쟁지 도청에서 승화된 ‘임을 위한 행진곡’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사상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서 열려
여야 정치권 하나되어 발포명령자·헬기사격·암매장 등 감춰진 진실 낱낱이 밝혀야
2020년 05월 18일(월) 00:00
1980년 5월 16일 광주지역 대학 교수와 학생, 시민 등 3만 여명이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모여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던 ‘민주화대성회 집회’ 장면. <광주일보 자료사진>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 광장은 5·18 항쟁의 심장이자 상징이다.

40년 전, 광주 시민·학생들이 민주·민주화 대성회를 열고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며 민주화를 촉구했던 광장이었다. 전남대·조선대를 비롯한 10개 대학 학생 3만여 명과 지식인, 시민들은 1980년 5월 14~16일, 이 곳에서 연일 집회와 횃불 행진을 벌이며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다.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이 총칼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숨결을 불어넣은 공간이다.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그날, 이제 40년이 그렇게 흘렀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앞서서 나간 이들의 희생으로 5월 광주는 전진했다. 민주화운동이 됐고, 국가기념일로 승격됐다. ‘폭도’들은 민주화유공자가 됐으며, 몰래 찾아가야만 했던 망월동 공동묘지는 국립 5·18민주묘지로 바뀌었다. 도청 앞에서 외쳤던 그날의 시민 정신이 심은 민주주주의 씨앗은 6월 항쟁, 촛불시민혁명의 싹을 틔워 민주정부 출범의 신호탄이 됐다.

제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오전 10시부터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다. 5·18 기념식이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리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5월 광주의 명예는 진정으로 회복됐는가. 학살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제 잘못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그 책임자와 인연이 닿아있는 정치인과 정파는 여전히 5월 상처를 헤집고 덧내는 왜곡·폄훼와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헬기 사격의 경위와 암매장 의혹도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5월의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이제는 40년 전,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있다 산화한 민주 영령들의 물음에 답할 때다. 왜곡되고 감춰졌던 사실들을 드러내고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세월이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