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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의 씨앗이 된 광주·전남 ‘민중의 힘’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광주·전남 편
이혜영 지음
2020년 05월 15일(금) 00:00
전남대 교정에는 유신독재에 항거했던 ‘우리의 교육지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5·18민중항쟁 10주기를 맞아 전남대 학생들이 사범대 벽면에 그린 민중항쟁도. <내일을 여는 책 제공>
“1980년대는 너무 먼 이야기라고요? 6·25나 6월항쟁이나 똑같이 까마득하다고요? 맞아요, 나도 그랬어요. 동학혁명이나 3·1운동이나 4·19나 한 덩어리로 ‘먼 시대’였어요. 그런데 조금 살아보니까 10년, 20년이 후딱 흘러가더라고요. 1980년 5·18도, 1987년 6월항쟁도 사실 멀지 않아요. 우리 등 뒤에 있어요. 지금의 우리를 만든 바로 엊그제의 역사였어요. 그런 항쟁이 없었으면 지금 당신과 나의 표정은 훨씬 어두울 거예요. 그때 쇠파이프를 들었기 때문에 2017년에는 촛불만으로도 권력을 끌어내릴 수 있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본문 중에서)

오늘의 나는 지나온 역사가 만든 ‘산물’이다. ‘나를 만든 현대사’라는 말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현대사’라는 말에는 격동과 대립이라는 단어들이 투영돼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했던 4·19, 신군부에 맞섰던 5·18민주화운동, 불의한 권력에 대항했던 촛불혁명은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민중들의 항쟁사를 재구성한 책이 발간됐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광주·전남 편’은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인 이혜영 씨는 광주시 양동 발산마을에서 나고 자라고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서른 무렵 고향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으며 ‘지리산 둘레길’ 등을 펴냈다.

책에는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광주·전남 민중항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투쟁, 전남대 ‘함성’부터 ‘교육지표’까지, ‘5·18민중항쟁·80년 5월의 절대공동체’, ‘들불야학사람들·오월시민의 탄생·6월항쟁’ 등을 다룬다. 또한 ‘인동초 김대중’,‘ 나주 수세거부 투쟁’, ‘투사가 된 노래들’, ‘조선대 학원민주화 투쟁’ 등 남도의 아픈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그간 ‘지방’으로 일괄처리된 각 지역의 역사에, 그 지역의 서술로 생기를 불어넣고자 한다”며 그럼에도 “나는 여러모로 어설픈, 경계인”이라고 말했다. 서른에 돌아와 시작한 고향살이에 대한 단상일 것이다.

책은 ‘사료’ 중심이 아닌 ‘땅’과 ‘인물’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민중항쟁 현장 답사기이자 역사인문지리지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책에서 상정하는 광주와 전남은 한 몸이다. 광주가 전남의 자양분을 먹고 자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1986년에 분리됐지만 “생활, 역사, 여가 모든 것이 한 덩어리였다”는 의미다.

먼저,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투쟁은 1976년부터 3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손에 쥔 실제 금액이 겨우 23원인 농민도 있을 만큼 가없는 투쟁이었다. 정부가 요구하는 금액(309만원)을 제시하며 생산장려금으로 하자고 했지만 농민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고구마는 자존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유신에 저항하던 첫 함성도 광주에서 태동했다. 1972년 12월 9일 밤, 전남대를 비롯해 광주고·전남여고 등 학교에 유인물이 뿌려졌다. 전국 최초 반 유신 선언문 ‘함성’이 출현한 순간이다. 제작의 주역이었던 이강과 김남주는 모진 고초를 당했고 제적을 당했다.

이후 서울의 대학에서 반유신 시위가 확산됐으며 무소불위의 긴급조치가 내려졌다. 1974년 민청학련, 그리고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의 불씨가 됐다.

80년 5·18은 한국 민주화 여정의 횃불이자 현대사의 가장 아픈 비극이다.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는 ‘K-공작’(K-King 앞 글자, 전두환 왕으로 만듦) 계획에 따라 광주에서 총과 칼을 앞세워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폈다. 그러나 아직까지 80년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초 발포명령자, 헬기사격, 실종자 등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저자는 전라도야말로 우리나라가 민주국가로 도약하는 데 큰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즉 전라도인의 헌신이 오늘을 거쳐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책을 통해 특히 젊은 세대와 소통을 꿈꾼다는 말은 그런 연유일 터다.

<내일을 여는 책·2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