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40년 아니라 400년의 기억공동체
임 의 진 목사·메이홀 & 이매진 관장
2020년 04월 28일(화) 00:00
5·18은 이 대지의 명예로운 정체성이다. 이는 나아가 도시 광주의 존재 가치가 되고 사명이 됐다. 5·18은 무슨 패배나 치욕의 역사가 아니다. 5·18은 민주와 자유의 분발이었으며, 국가폭력을 극복하는 ‘역설의 공헌’이었다.

기독교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만 머물지 않고, 그의 부활과 민중의 각성을 기념하듯이 5·18도 발포 명령자와 학살의 진실이 소상히 밝혀지면 명예의 회복은 물론이고 항구적인 민주 보장의 지렛대가 되어줄 것이다.

광주의 기억공동체는 세월호 앞에서도 동병상련을 나눴다. 안보란 국경을 지키는 안보라 여겼던 그간의 고정된 사고를 전복시킨 또 한 번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안전한 삶, 국가가 지켜주는 건강한 일상을 안보라 인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안보관의 변화는 오늘 코로나 19 대응에 큰 밑거름이 돼 주었다. 심지어는 5·18까지 덮고 폄훼하려는 자들에 의해 촉발된 광주의 진실 규명 운동은 반민주의 무덤을 부수고 모욕죄 도입과 헌법 전문 명시에까지 이르리라 확신한다.

아직 검은 조기와 리본을 단 상주가 있는 시절에는 노래와 나팔을 그치는 것도 예를 갖춤이겠다.

코로나 19로 40주년 기념행사들이 대거 취소되거나 보류됐다고 들었다. 머리로 짜낸 노래와 ‘넋춤’과 기획들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기도 하다.

가슴으로 뭉쳐지고 어깨동무로 펼쳐진 거리의 함성이 아니라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뉴노멀의 시대에 5·18은 ‘식지않은 정신의 연출’로 진행되는 새출발의 시연이길 바란다.

금남로와 망월동의 영령들조차 방역마스크를 끼고 서성이는 낯선 시대. 외형적으로는 고요하고 섭섭한 오월이겠지만, 군부독재의 잔재와 국정농단 의회권력에 철퇴를 내린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만한 40주년 기념행사는 다시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월을 폄훼하고 시민의 부아를 돋우던 극악한 입방정과 조력자들을 일부 날려버렸다. 남은 자들도 조만간 영령들 앞에 조아릴 수 있도록 산자는 싸워나가야 하리라. 40년 아니라 400년, 진실을 위해서라면 치열하게 싸워나갈 광주공동체임을 다짐하고 결의하는 순간이다.

역사의 울돌목을 그린 황지우 시인의 희곡 <오월의 신부>에는 광주 공동체가 피를 나눈 공동체임을 노래하고 있다.

“의사: 피가 부족해요! 피가! / 이영진: (의사에게 팔뚝을 내밀면서) 내 피를 몽땅 뽑아 여그다 너주쇼! 살릴 수만 있다면 다 뽑아요.”

피는 서로가 서로에게 흘러 한 혈육이 되었다. 놀라운 신비가 우리를 감싸고 하나 되게 했다.

인도의 탈식민주의 비평가 호미 K. 바바는 말했다.

“상기(remembering)란 내적 성찰이나 회고처럼 평온한 행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재라는 시대에 아로새겨진 정신적 외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조각난 과거를 다시 일깨워 구축한다고 하는,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폭력이 지배하던 전장에서 가까스로 되찾은 일상. 후유의 침묵을 깨고 광주는 끝없이 조각난 과거를 일깨워 ‘산 역사’로 구축해왔다. 계속된 수혈처럼 그러한 결속이 없었다면, 피의 공급이 끊어졌다면 광주의 심장은 이미 멈춰 섰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성찰과 회고는 5·18 기억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침잠에 빠진 연민을 얘기할 만큼 정세가 한가롭지도 않았다. 죽기 살기의 싸움으로 버티고 지켜온 광주는 편안히 쉴 틈조차 갖지 못하고 다시 출정하는 마음가짐이다.

상기를 금지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치들과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 오월의 현장이었던 기억의 공간들을 소중하게 지켜내야 한다.

미래세대에 광주의 기억을 교육하고 전달하는데 그만한 기재가 없다.

둘째, 기억을 공유하는 연대와 교류에 보다 더 과감한 활동과 응원을 다해야 하겠다. 폭력과 억압에 놓인 아시아와 세계 인민을 향하여 믿고 의지할 모범적 도시로 광주를 떠올릴 수 있도록 다층의 조응과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셋째, 문화예술계의 기억 재생, 상징화 활동을 적극 후견해야 한다. 기억 재생, 상징화를 통해서야 오일팔은 영속되고 확대되며 세대를 넘어서 교감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에 지역민과 외부인의 경계나 분리는 없어야 마땅하다. 지역색, 배타적인 빗장을 열고 과감히 함께 해갈 때 우리의 승리는 모두의 승리로 꽃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