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세월호 수난곡
2020년 04월 20일(월) 00:00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 건립 800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 이 교회에서 이루어진 ‘마태 수난곡’ 연주 실황을 담은 영상물의 한 장면. 예수가 자신의 열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다가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하자, 제자들은 저마다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라며 걱정스레 묻는다. 그런데 각각 독창과 중창으로 예수와 제자들을 연기하는 이 오페라적 장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합창에서 갑작스럽게 시점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때 합창(작곡가 바흐는 여기서 부르기 쉬운 찬송가풍의 코랄 선율을 썼다)의 가사는 이렇다. “지옥 속에서 손발이 묶인 채 참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이 장면의 시점 전환을 표현하기 위해 영상을 담는 카메라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위치한 2층 성가대석을 한 프레임으로 잡은 뒤 천천히 ‘줌 아웃’하면서 1층 예배석에 앉아 있는 청중들을 포함한 성토마스 교회 실내 전체를 비추어 보여 준다. ‘참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할 때의 ‘나’는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들만이 아니라 현장의 교회에서 그리고 영상물을 통해 이 ‘음악적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이라는 뜻에서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참담한 심정을 그린 독창곡(‘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상적인 바이올린 독주에 실리는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보다도, 이런 짧고 단순한 코랄 합창 장면이 주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음악과 노래에 근본적으로 내재해 있는 참여적 공감의 힘에서 비롯된다.

예수의 죽음이 누구랄 것 없이 바로 ‘나’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이 코랄 합창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필자에게조차 모종의 종교적 숭고미를 느끼게 해 준다. 맹목적 도덕규범을 강제하는 ‘원죄 의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서양 기독교의 좀 더 보편적인 윤리를 특징짓는 것은 이러한 자기성찰적 책임 의식이 아니었을까?

세월호 6주기를 맞아 이번 달에 새로 출간된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다가 고(故) 박시찬 학생의 아버지 박요섭 씨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바로 기독교 ‘수난곡’을 떠올렸다. “교회에 계시는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이들 좋은 데 갔으니까 이제 그만 가슴에 묻으라고요.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는 2천 년 전에 죽었는데 왜 아직도 죽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십니까.”

세월호 참사로 죽은 아이들을 예수에 빗대는 게 합당한가 하는 물음은 합당하지 않다. 물론 예수와 세월호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사건의 맥락 속에서 죽었지만, 무고한 희생을 부른 우리 사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나’의 윤리적 각성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죽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더 나은 사회와 올바른 삶에 대한 윤리적 각성의 보편적 요구가 없다면, 예수의 죽음조차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되새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와 같은 비기독교인에게는.

이 점에서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책 속에 담긴 오디오 CD를 통해 ‘416합창단’의 노래를 듣는 것은 ‘마태 수난곡’의 코랄 합창을 듣는(내면의 목소리로 함께 부르는) 체험과 그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그들의 노래가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에 앞서, 이 땅의 기성인으로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또 다른 ‘엄마와 아빠’로서, ‘나’의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새삼스러운 것은 음악과 노래의 힘이다. ‘416합창단’은 18명의 세월호 유가족들,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무엇이 그들을 노래하게 했을까? 책 속에 글로 참여한 소설가 김애란의 표현대로 ‘누군가의 노래를 듣는 건 그 사람의 숨소리를 공들여 듣는 일’이며, 나아가 합창이란 ‘나를 에워싼 사람들의 숨소리를 열심히 듣다 적절한 시간에 자기 숨소리를 얹는 일’이다.

2014년 12월에 작은 노래 모임으로 시작한 ‘416합창단’은 지난 5년간 전국의 여러 장소에서 270여 회에 달하는 합창 공연을 통해 그들과는 다른 처지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숨소리를 듣고 연대하며 거기에 자신들의 숨소리를 얹었다. 그것은 치유받으면서 동시에 치유하는 미적 상호 소통의 과정이었다. 소설가 김훈은 이들의 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목소리로 사람의 슬픔을 감싸서 슬픔을 데리고 슬픔이 없는 나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