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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토렴과 한국 음식의 전통
2020년 04월 09일(목) 00:00
부산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서면에는 돼지국밥 골목이 있다. 이 골목엔 40년 이상 된 돼지국밥집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 작년 5월 이 거리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대만 여행객이 촬영한 돼지국밥의 토렴 영상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밥이 담긴 뚝배기를 들고 뜨거운 국물을 담았다 빼는 동작을 반복하는 장면이었다. 토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들의 눈에는 매우 불편해 보였을 것이다.

급기야 몇몇 외국인이 관할 구청과 부산관광공사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밥의 조리법이 비위생적이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이 제기한 민원의 반향은 의외로 컸다. 관할 구청은 공개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하겠노라 발표했고 언론은 앞다투어 이 문제를 다뤘다. 당시 나도 방송과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사건 발생 후 돼지국밥 골목의 풍경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 직접 찾아가 봤다. 어떤 국밥집은 면장갑에 위생장갑까지 끼고 여전히 토렴을 고수하고 있었고, 어떤 국밥집은 쇠로 된 집게로 뚝배기를 들고 토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 국밥집은 토렴을 아예 없애고 따로국밥을 제공하고 있었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에 불과해 보였고 그런 변곡점 속에서 우리네 소중한 식문화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사실 외국인의 민원이 아니라도 토렴은 결국 사라질 운명이었다. 보온밥솥이 보편화된 시대에 굳이 뜨거운 국물로 식은 밥을 데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다. 밥이 든 뚝배기를 한 손에 들고 펄펄 끓는 국물을 재빨리 끼얹어 적정한 온도로 맞추는 일은 경험자의 몫이다. 속도와 타이밍이 관건이다. 그래서 어느 국밥집이건 토렴은 그 집에서 연륜이 가장 오래된 사람이 한다. 비싼 인건비를 써 가며 토렴을 하느니 차라리 국과 밥을 따로 내는 편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저잣거리나 교통의 요충지에 있던 주막은 돈을 내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주막의 메뉴는 예외 없이 국밥이었다. 국은 아궁이에 가마솥을 걸고 언제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밥은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손님상에 내기 전에 국물로 밥을 데우는 방식을 고안했으니 그것이 토렴이다.

토렴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먹는 쌀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딱딱한 쌀이 말랑말랑한 밥이 되는 과정을 호화(糊化)라고 한다. 쌀이 가진 아밀로스라는 분자는 단단하게 결합된 조직인데 열과 수분이 침투하면 서로 분리되고 부풀어 올라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갓 지은 밥을 상온에 두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아밀로스 분자는 다시 원래대로 단단하게 결합하게 되는데 이를 노화(老化)라 한다. 즉 토렴은 노화된 밥에 뜨거운 국물을 끼얹음으로써 다시금 호화를 촉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식어 버린 밥을 토렴을 통해 먹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건 아밀로스 함량이 적은 단립종만 가능하다. 안남미처럼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장립종은 일단 노화가 진행된 후에는 아무리 뜨거운 국물을 끼얹어도 말랑말랑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 없이 오로지 경험으로 토렴을 발견한 우리 조상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 국밥을 패스트푸드화 시킨 토렴은 산업화 시대에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단 국과 밥만 있으면 일 분도 안 돼 국밥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 졌고, 수백 명을 동시에 먹일 수 있었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 현장으로 가야 했던 산업역군에게 국밥은 더할 나위 없는 끼니였다. 75~80도씨 정도로 적당히 데워진 국밥은 후후 불어 가며 먹을 필요가 없었다. 여차하면 뚝배기를 들고 후루룩 마실 수도 있었다. 토렴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견인했다.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자동으로 밥을 짓는 전기밥솥이 처음 상용화된 것은 1952년이다. 보온밥솥이 상용화 된 것은 1965년의 일이다. 심지어 지금은 전자레인지로 2분만 데우면 갓 지은 것과 다름없는 따뜻한 쌀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부산의 돼지국밥을 비롯해 서울 청진동의 해장국밥, 나주의 곰탕, 전주의 콩나물국밥, 심지어 익산의 황등비빔밥까지도 몇몇 노포(老鋪)에서는 토렴을 고집한다.

인간 관능의 총체인 ‘맛’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랜 세월 축적되고 정서에 스밀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그냥 따뜻한 밥과 뜨거운 국물을 품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된 밥의 차이는 경험을 통해서만 분별이 가능하다. 토렴은 비효율적이기에 오히려 효율적이며, 그 비효율이 한때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손도 대지 못할 뜨거운 뚝배기를 앞에 놓고 한국음식의 전통 운운하는 건 참으로 부질없어 보인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