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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과 오지호
2020년 04월 01일(수) 00:00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며칠 전 신문을 읽다가 ‘인상적인’ 기사를 접했다. 인구 2만 3000여 명의 시골미술관이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화백의 ‘나무와 두 여인’(1950년대 작)을 품에 안았다는 내용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은 지난달 시장에 매물로 나온 이 작품을 갤러리를 통해 7억8550만원에 구입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박수근 미술관과 강원도 양구군은 하루아침에 미술계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박수근 미술관이 이 작품을 소장하게 된 데에는 엄선미 관장과 양구군의 ‘콜라보’가 있었다. 지난달 엄 관장은 한 컬렉터가 42년간 소장해왔던 ‘나무와 두 여인’을 시장에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서울로 향했다. 엄 관장이 ‘나무와 두 여인’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 때문이다. 헐벗은 겨울 나무 옆을 지나가는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박 화백의 ‘나목 시리즈’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특히 소설가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裸木)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실물을 본 엄 관장은 박수근 화백의 장남과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로 부터 진위여부를 검증받은 후 다음날 양구군청에 보고서를 올렸다. “미술관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이 작품을 사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2002년 박 화백의 이름을 달고 생가 인근에 미술관을 열었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데에는 2%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2점은 귀로·일상·정물 등의 주제별 대표작들로 ‘나목’ 시리즈는 단 한점도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한해 평균 미술관 작품 구입 예산 3억 원으로는 도저히 가격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군수 및 군의원들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그림이라면 문화관광과에 배정된 관광예산 5억 원도 보태라며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 우여곡절끝에 1년 예산을 몽땅 털어 ‘명작’을 손에 넣은 미술관과 양구군은 국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강원도의 브랜드로 활용하기로 했다.

기사를 읽고 나니, 문득 화순군 동복면에 자리한 오지호(1905~1982)기념관이 오버랩됐다. 지난 2005년 1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오 화백의 생가 터에 둥지를 튼 이곳은 ‘오지호 기념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한국 인상파 거목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유화 한 점이 없어서다. 개관 당시 유가족이 기증한 크로키 1점 이외에는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 51점이 모두 모조품이다.

게다가 관장은커녕 기능직 공무원을 배치해 시설관리에만 치중하다 보니 내실있는 운영은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화순적벽투어와 연계해 기념관을 찾은 상당수 관광객들은 “적벽의 비경을 둘러 본 후 거장의 황량한 기념관을 본 순간 여행의 감동이 반감됐다”며 입을 모은다. 하지만 더욱 아쉬운 건 ‘진품없는 기념관’에서 벗어날 ‘장밋빛 비전’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해 예산 2500만 원이 기념관의 참담한 현실과 미래를 방증한다. 언제쯤이면 화순군의 ‘담대한’ 컬렉션을 볼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