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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의 일기 통해 본 조선인들의 희로애락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
이상호·이정철 지음
2020년 03월 13일(금) 00:00
1616년 7월 17일(음력) 경상도 예안현(지금의 경북 안동시 예산면)에서 전염병이 발병했다. 전염병에 걸린 주민들은 철저하게 고립됐다. 물론 약도 구할 수 없었고 특별한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전염병 자체도 두렵지만, 주위로부터의 배척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더 무서웠다. 누군가로부터 터부시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당시 전염병에 걸린 정희생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라리 그 쪽이 병에 의해 죽는 것보다 나았다.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감염이 언제, 어디까지 확산될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전염병에 감염된 조선시대 민초의 사례는, 오늘날 코로나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확진자가 늘면서 가짜 뉴스는 물론, 신상털기, 인신공격성 발언 등과 같은 부정적인 양상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전염병 사례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조선은 나라 운영에 관한 세세한 기록이 있을 만큼 기록의 나라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인데, 국가 차원의 기록뿐 아니라 유생들의 일기도 귀한 자료였다.

유생들의 일기를 통해 본 조선인들의 희로애락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다. 경상도 유학자 20인의 일기로 본 당대의 내밀한 풍경을 기록한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가 바로 그것.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과 이정철 박사가 펴냈으며 조선 사람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책은 한국국학진흥원에 보존된 3000여 점의 일기류가 원천 자료가 됐다.

당대의 국가시스템은 오늘에 참고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다. ‘피혐’이라는 제도가 그렇다. 탄핵받은 관리가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대기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혐의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차원이었다. 물론 이를 통해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함이었다.

무거운 처벌을 내릴 때는 무엇보다 객관성 담보가 중요했다. 이 때는 반드시 심문관 두 명이 추국하는 ‘동추’를 해야 했다.

상피제는 과거시험에서 엄격히 적용됐다. 작금에 문제가 됐던 부정시험 사례와 연계해보면 수긍이 간다. 한마디로 ‘권력은 공정해야 한다’는 명제를 시스템에 적용시킨 명징한 사례다.

“과거시험에서 아버지가 시험관이 되면 아들은 그곳에서 시험을 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시험 자체를 볼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관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인척이 상사로 임명되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피해 주어야 했다.”

일상과 연관된 지혜들도 만날 수 있다. 시집간 딸이 친정을 찾아 한 달여간 머물 수 있었던 ‘근친’, 상황이 안 돼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안사돈들이 동반해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 ‘반보기’ 등은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의 직장생활과 연계해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하루 12시간 근무했으며 연 70일을 쉬었다는 내용도 있다. “여름에는 묘시, 즉 새벽 5시에서 7시 사이에 출근했다. 그리고 퇴근은 유시, 즉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였다.” 오늘날의 주 52시간 근무제에 비하면 노동강도가 만만치 않다.

이처럼 책은 여느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공식 문헌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살이는 기록을 넘어 당대의 지혜로 다가온다.

<푸른역사·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