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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기생충’
2020년 03월 10일(화) 00:00
[전성건 안동대학교 교수]
얼마 전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Oscar: 아카데미상의 다른 말)를 휩쓸었다.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짜파구리 연찬(宴饌)을 통해 기생충의 쾌거를 축하하고 기생충이 보여 준 사회의식에 공감하였다. 빈부의 차이는 경제의 차이이며 경제의 차이는 정치의 수준을 보여 준다. 기생충의 오스카를 마냥 축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봉준호 감독의 어록도 화제가 됐다.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그저 로컬일 뿐이다.” 미국의 패거리 문화를 비판했다고 할 수 있다.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 자체가 의사 소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에게 헌정한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해석이 분분하다. 개인의 고유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다른 삶의 영역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등의 해석이 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각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우리 사회는 각자의 무늬를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는가?

기생충의 성과는 인문(人文)의 구현이다. 인문은 인문(仁紋)이다. 인문은 서로를 살리는 상생(相生)을 목적으로 한다. 상대를 죽이는 상극의 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 위한 조건이 있다. 각자의 무늬를 찾고 그 무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주체성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이를 ‘서로 주체성’이라고도 부른다. ‘홀로 주체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생충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화려한 기생충의 오스카 축제는 코로나의 정치학에 의해 잠식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 확진 환자, 검사 진행, 격리 해제, 사망자 등에 대한 국내외 발생 현황이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은 코로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는 이른바 ‘자가 격리’를 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자가 격리는 타인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 자가 격리의 순수성은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격리시키는 데에서 생겨난다. 그렇다고 타인과의 접촉으로 인해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인 것도 아니다. 주체로서의 내가 바이러스 감염의 범위 내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자각 및 그에 따라 타인을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 그 순수성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린 신천지이다. 길거리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 백화점과 가게 그리고 식당 등에 빼곡하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성지순례라도 떠난 것일까. 그리고 늘 그렇듯 미디어 정치가 시작되었다. 모든 죽음의 원인이 코로나가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또한 코로나와 연계되었다. 공천과 위성정당 등은 코로나와 무슨 관계일까?

코로나는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천재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재는 정치적 심판으로 귀결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생각난다. 천재일 수도 인재일 수도 있겠지만,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겠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미증유의 사태라면 조심하면서 평소대로 생활하면 된다. 주변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고, 물을 많이 먹자. 차분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두려워하되 멀리하자.” ‘두려워하자’는 말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처하자는 말이다. ‘멀리하자’는 말은 우리의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그것에 의해 동요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평상심이 필요하다. 문제가 목전에 다가왔을 때, 평상심을 잃으면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복될 것이고 극복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의료인들의 도움을 받아 방역과 치료에 도움이 될 일들을 찾아 실행해야 된다. 종교인들은 전염성 질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단체행동을 자제하고 선교 전략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급선무가 무엇인지를 알면, 그다음의 행동 요령은 찾아지기 마련이다.

제발 코로나의 정치학은 잠시 접어 두자. 지금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코로나를 정치적으로 여기저기 이래저래 엮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