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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의 꽃은 봄날에도 시든다
2020년 03월 06일(금) 00:00
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꽃을 좋아하는 지인이 꽃을 선물했다. 매일 물을 갈고 물때를 닦고 시든 이파리를 떼어 내도 일주일이 지나니 시들시들해졌다. 마침 신도 한 분이 차실에 들어왔다가 시든 꽃을 보았다. “스님, 법당에 꽃이 올라왔는데요. 새 꽃으로 바꿀까요?” 나는 그냥 두라 하였다.

시든 꽃을 버리지 않고 그냥 둔 것은 선물한 이의 마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특별히 꽃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신도분이 가고 나서 시든 꽃을 다시 보았다. 시들어 하나 둘 꽃잎을 떨구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말라서 쪼그라지고 색까지 바랬지만 여전히 꽃은 꽃이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시들 조짐이 보이면 곧바로 버려지는 것이 꽃의 삶이다.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이다.

시들시들한 꽃다발을 자세히 보면, 한 때나마 활짝 피어서 자태를 마음껏 뽐내던 꽃들도 있지만, 몽우리 맺힌 채로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만개한 꽃들 보다 훨씬 작기에 시들시들한 꽃잎 옆에 혹은 가려진 아래에 잘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그러나 다닥다닥 붙어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듯 결연한 각오를 뿜어내고 있다. 시들어 처연하게 꽃잎 떨구는 염세적인 미학과는 다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시든 꽃은 꽃으로서의 효능을 상실했기에 단지 쓰레기에 불과하다. 결국 시든 꽃의 운명은 쓰레기통에서 마감한다. 음식물도 아닌데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사람이 마음대로 버려도 되는 꽃은 하나도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인간이 꽃이라고 부르기 전에 꽃은 꽃이 아니다. 꽃이라 불리는 순간, 그것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손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허리가 싹둑 잘려 꽃병에 꽂혀서 며칠을 버티다가 시들해지면 버려진다. 꽃이라 불려지는 그것은 인간에게 단지 욕망을 위한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꽃은 시든다 하고 사람은 죽는다 한다. 또 어떤 것은 썩는다고 하고 어떤 것은 닳는다고 한다. 인간이 붙인 말과 그 뉘앙스는 제각각 다르지만 결국 모두 변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만약 사람이 시들지 않는다면 모르겠으나, 사람 역시 시들긴 매한가지이다. 사람도 시들해지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다가 결국 요양 시설에 버려진다. 인간 역시 한 떨기 꽃보다 나을 것 없는 존재이건만, 인간은 자신이 꽃들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통찰과 그에 따른 꽃에 대한 연민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꽃을 대하듯 그렇게 인간을 대하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이다. 신이야말로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다. 일찍이 베이컨은 인간의 이런 편협한 자기 중심적 사고를 ‘종족의 우상’이라 칭하였다.

꽃병의 꽃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도 시들시들하다가 죽어 버린다. 실로 인간적인 죽음이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휘영청 밝은 달이 뜬다. 여름이면 서늘한 바람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천지를 덮는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봄날에 활짝 피는 꽃과 가을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얽매여서 그 아름다움을 자신의 방 안으로 가져온다면, 그래서 어떻게든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한다면, 그것은 꽃병의 꽃 같은 신세가 되어 버린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은 우리들 욕망의 산물이다. 우리가 버리는 것은 시든 꽃이 아니라 우리들의 박제된 욕망이다.

‘무문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만약 머리에 담아 둔 쓸데없는 일 없다면(若無閑事掛心頭)/ 사람 사는 일 언제나 좋은 것(便是人間好時節)” 인간이 그토록 갈구하는 영원한 행복, 혹은 깨달음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꽃병의 꽃은 2주가 지나도 그럭저럭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꽃병에 수감된 처지가 안쓰러워 챙겨 준 탓도 있지만, 허리를 싹둑 잘려도 제 스스로 꿋꿋하게 잘 버텨 내고 있다. 세상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시든 꽃 하나 마음대로 대해선 안 될 것이다. 꽃이 시들 듯 사람도 시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