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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들어 내는 관점
2020년 02월 21일(금) 00:00
[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광주사회복지회 부국장]
최근 우리 사회의 상황을 설명한다면 홍역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매체들이 온통 신종 코로나에 대한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하느라 분주했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바이러스의 전염과 확산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은 미디어의 당연한 역할이다. 한데 ‘코로나19’와 관련된 뉴스들이 정확한 정보와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말하고 싶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바이러스 확진자들이 늘어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땠는지? 특히 우리 지역에서 첫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어땠는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아니 왜 동남아 여행을 가서는 참!’ ‘도대체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뭐하고 있을까?’라면서 다른 사람 탓을 했는지? 아니면 ‘빨리 쾌유되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확산되지 않도록 손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해야지’라며 함께하려는 마음이었는지 묻고 싶다. 각자의 관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우리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이나 문제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관점의 논리에 의해 얼마나 큰 슬픔을 겪었는지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당신이 사셨던 그 시대의 기득권에게 표적이 되셨다. 예수가 반대 받는 표적이 되신 이유는 당시 기득권들의 논리와 삶에 반기를 드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다 보면, 놀라울 때가 많다. 율법학자들이 가르치는 계명과 예수께서 가르치는 계명의 근본이 같다는 것이다. 그 계명은 바로 십계명인데, 십계명의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율법학자들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쳤고, 예수도 또한 말씀과 행동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예수와 율법학자들이 같은 율법을 두고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예수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중심을 두셨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사람이 지켜야 하는 계명에 중심을 두었다. 그렇다 보니 계명에 중심을 두는 이들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렸고, 예수는 사람들을 계명의 주체이며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었다. 엄연히 다른 이 두 관점, 그래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아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 쉽게 말해 예수가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을 살리는 관점이며, 예수가 사셨던 시대의 기득권이 가졌던 관점은 사람을 계명의 노예, 곧 사람을 죽이는 관점이었던 것이다.

지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코로나19이다. 이 바이러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어디를 향하는지 우리 각자가 물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관점인지?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관점인지? 바이러스 발생 이후 아직까지 집에도 가지 않고 확산을 막고 있는 이들, 우한 교민들을 한국으로 송환하고 격리 지역까지 운전하겠다고 자원한 경찰들, 밤낮없이 확진자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의사들과 병원 관계자들. 이들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마스크를 매점매석하여 이득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 품귀 현상이 일어나자 갑자기 마스크와 손세정제의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이들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모두가 예수처럼 희망을 만들어 내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