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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백년서재’를 보고
2020년 01월 29일(수) 00:00
지난 설날 연휴, ‘반가운 얼굴’을 TV에서 만났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식인이자 영원한 문학청년인 이어령(87) 전 문화부 장관이다. 지난 2006년 4월 광주일보 창사 54주년 특별 대담을 나눴던 ‘인연’이 있던 터라 채널을 고정한 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JTBC 토크멘터리 형식의 ‘헤어지기 전 몰래하고 싶었던 말-이어령의 백년서재’에 출연한 선생은 예의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젊은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제시했다.

“우리 때는 총성이 들리는 전쟁이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총성이 들리지 않는 전쟁을 치르며 사는 것 같다. 혼자서 꾸면 꿈으로 끝나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된다.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라. 죽음만큼 절박하고 중요한 게 없다. 그래야 산다는 게 뭔지 안다. 사막의 갈증을 느낀 자가 물의 맛, 삶의 맛을 알게 된다.”

여느 때와 달리 이날 선생의 묵직한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지난해 암 선고를 받은 후에도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쓰고 싶은 이야기를 집필하느라 혼신의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리라.

문득, 선생과 나눴던 ‘그때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 읽었다. 당시 선생은 ‘디지로그-선언’이라는 책을 통해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

“아날로그니, 디지털이니 하는 말 자체도 어려운데 ‘디지로그’(Digilog)는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내 첫 질문에 “언제부턴가 디지털 문화가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하면서 ‘기술’만 있고 휴머니티는 사라져 버린 각박한 세상이 됐다. 그렇다고 디지털 문명과 담을 쌓고 살 수도 없는 일....이런 기술문명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 아날로그의 감성을 융합한 디지로그다”라고 답했다. 이미 선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디지로그가 후기 정보화 사회의 키워드가 될 것임을 내다 본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사례로 제시한 아마존의 온·오프라인 매장 협업이 바로 디지로그 개념이다. “한국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고 외쳤건만 (그러지 못해)아쉽다. 빨리 사람들이 캐치해서 대응했으면 알파고도 한국에서 나왔을 지 모른다. 인간보다 잘 뛰는 말을 이기려면 올라타야 한다. 뒤쫓아가면 뒷발에 차여 죽는다. AI도 그렇다. AI에 올라타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과 기계가 못하는 걸 합쳐야 한다. AI를 두려워 말라. 네가 올라타면 너는 천리마가 된다.”

설날 연휴, 선생의 혜안을 접하니 새삼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당시 특별대담의 또다른 의제였던 ‘문화광주의 미래’를 향한 선생의 애정 어린 조언이 생생하게 떠올라서다.

“흔히 그 도시가 ‘문화도시다’ ‘아니다’라는 기준은 시민들이 ‘문화의식’에 달려 있다. 우리가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는 건 스카프 하나라도 멋지게 두르는 파리지앵의 미의식 때문이다. 문화수도의 첫걸음은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는 시민들의 멋이다.” 비록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젠 광주가 답할 때다. 지금부터라도 개개인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문화적으로’ 바꾸자.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