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빨라도 너무 빠르다
나 태 주 시인
2020년 01월 10일(금) 00:00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속도 제일주의, 조급증이다. 도무지 진득하지 못하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참지를 못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특히 남의 일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그리고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서 버린다.

우리가 예전에도 그랬을까? 내가 살기 이전 세상은 모르겠거니와 내가 어려서 보아 온 세상은 조금은 여유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었던 세상이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웠으며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렇게 조급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우선 자동차가 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번 서울서 저녁 행사를 마치고 후배 시인이 운전하는 자동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귀가한 적이 있다. 마침 밤이었고 그 운전자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이라서, 한껏 속도를 낮추어 한참을 달렸다. 많은 차들이 비켜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차를 세웠을 때 경찰 한 사람이 다가와 후배 시인을 불러세우는 거였다.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해서 왔습니다. 혹시 약주를 잡수셨습니까?” 그러더니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가 술을 먹지 않은 것으로 나오니 다시 물었다. “혹시 몸이 아프신 건 아닙니까?” 후배 시인이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경찰은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느 만큼은 속도를 내어 달려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를 합니다.”

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내가 보기론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는 것 같던데 그것이 신고의 대상이라니! 그러니까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통하는 실례라 하겠다. 우리들 사는 세상이 모두 이렇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자동차는 웬만큼 달려서는 달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갑갑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그건 마찬가지다.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좋은 기계인가. 그런데도 컴퓨터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빠른 것이 될 것인가. 이는 속도 불감증 수준이다. 일 처리 하나하나가 그렇고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이 모두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빨리만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속도를 아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나 빨리 가자는 말을 하고 싶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충분히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 저절로 속도가 조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좀 살펴 봐야겠다. 그런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의 방책이 나오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서두르고 빨리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족감을 느끼고 불만을 말한다. 심한 경우는 화가 나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들의 속도감에 있지 않나 싶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이것은 또 괴테의 충고다. 방향을 잘못 정하고 속도만 낸다면 망하는 길이 빠를 뿐이다. 속도를 좀 줄이자. 쉽게 줄어들진 않겠지만, 지금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조절을 해 보자.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어지럼증을 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