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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피해자 모두 고령…5·18 진실규명 마지막 기회
제1부 5·18진상규명, 마지막 기회 (2)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과제
5·18도 어느덧 40년
발포 책임자와 피해 현황
암매장지 소재와 발굴 등
청문회·검찰수사·특조위 활동에도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2020년 01월 07일(화) 00:00
1980년 5월 21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인근 상공에 UH-1H 기종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170여 점의 탄흔이 호버링(hovering ·정지비행) 상태의 UH-1H 헬기 양쪽 문에 거치 된 M 60 기관총에 의한 난사의 흔적이라고 판정했다. 전두환(88)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가장 악조건에서 실시되는 5·18 진상조사, 가해자들의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계엄군에 의해 유혈 진압된 지 40년이 지났다.

지난 40년간 민간차원·학술연구·정부기관에 의해 보상 등 명예회복이 상당부분 이뤄졌지만, 5·18에 대한 진실 규명은 역사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동안 정부는 ▲지난 1988년 노태우 정권 시절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약칭 국회청문회) ▲1995년 김영삼 정권 시절 12·12 및 5·18 사건 서울지방검찰청, 국방부감찰부 수사(약칭 검찰조사) ▲2007년 노무현 정권 시절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약칭 과거사위원회) ▲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약칭 국방부 특조위) 등을 통해 5월의 진실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발포 명령자는 누구인지, 희생자는 정확히 몇 명인지 어떻게 처리됐는지, 신군부의 5·18 조작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은 없었다.

진실 규명작업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마저도 박약한 탓에 어설픈 진상조사가 되면서, 오히려 5·18에 대한 왜곡·폄훼 세력에게 자양분이 됐고, 지금도 그들은 줄기차게 5·18을 공격하고 있다.

1988년 국회청문회에서는 정권탈취 세력의 주축인 노태우가 대통령이었던 만큼 증언대에 오른 계엄군 관련자들이 현실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당시 청문회에서 광주시민들의 목격담·증언보다는 왜곡된 군 자료를 더 신빙성 있다고 본 것이 조사의 한계라고 5월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1995년 검찰조사는 전두환 등을 구속하는 데만 급급해 5·18보다 12·12사건에 비중을 두고 수사가 진행돼 5·18진상규명이 불가능 했다.

2007년 과거사위도 전남도청 앞 발포 명령 관련 문서와 발포 명령계통을 밝히지 못하는 등 국방부 자체 조사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2017년 국방부 특조위는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성과를 이끌어 내긴 했지만, 짧은 조사기간과 강제조사권이 없는 등의 문제로 진실의 벽을 넘진 못했다.

40년 동안 이어진 5·18에 대한 폭력은 피해자와 가족, 광주시민들에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를 놓고 5·18에 대한 시각도 여전히 갈리고 있으며, 각종 왜곡·폄훼 뉴스와 동영상이 날마다 제작·유포되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전복시키기 위해 5·18을 일으켰다는 ‘북한군 침투설’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며, 전두환씨는 ‘본인은 5·18과 관련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묻혀 있었던 5·18 진상규명에 대한 온 국민의 열망이 반영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의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이하 5·18진상조사위)가 지난 3일 공식출범을 선언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3일 오후 광주시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오월 단체 대표자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5·18 유가족, 단체들은 이번 조사위 활동이 진상규명과 오월 영령들의 한(恨)을 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특별법 제3조 (진상규명의 범위)에서 규정하고 있는 진상규명 현안은 모두 7개다. 1980년 5월 당시 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등 사망·상해·실종·암매장 사건과 인권침해 사건 ▲군의 시민들에 대한 발포(헬기사격 포함) 책임자와 경위, 시민 피해자 현황 ▲‘5·11연구위원회’ 등 진실왜곡·조작의혹 ▲집단학살지·암매장지 소재와 유해 발굴·수습 ▲행방불명자의 규모와 소재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와 북한군 침투조작사건 ▲그 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건 등이다.

특별법을 근거로 설립된 독립기구인 5·18진상조사위는 법의 보장을 받으며 자유롭게, 강도 높은 활동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5·18진상조사위의 권한도 절대적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조사위는 조사대상자나 참고인에게 진술서 제출을 요구하거나 출석요구, 진술청취를 할 수 있다. 출석 요구를 받은 사람 중 정당한 사유 없이 2회 이상 응하지 않을 때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자료 확보에 대해서는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의뢰해야 한다. 특히 계엄군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면책 등이 중요한데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한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이나 감형, 사면 등도 건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5·18연구자들은 5·18진상조사위가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인 이번 조사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상조사의 목표와 과제를 정확히 정하고 체계적으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연구자는 “그동안 5·18 진상조사에서 가장 핵심인 전두환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다”며 “전두환을 철저히 조사해 그의 입을 열게 만든다면, 이후 모든 진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송선태 5·18진상조사위 위원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들 모두가 자연수명이 많이 남아있지 않고, 기억도 총명하지 않다. 자료도 많이 훼손되고 왜곡도 많이 진행됐다”며 “당시 현장도 도시개발 등의 이유로 훼손되거나 보존돼 있지 않고 가해자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양심적 제보도 없는 상황 등 5·18 진상규명에는 가장 악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 위원장은 “그동안 선행됐던 조사들의 미흡점과 맹점 등의 분석 작업들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증언과 자료 인물 용역 작업 또한 완료돼 가고 있다”면서 “가해자들의 양심적 증언을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