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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득염의 건축인문기행 황금빛 신비의 나라 미얀마 ② 미얀마의 역사
4번에 걸친 몽골리안 이동 동남아 변동을 가져오다
1차 이동 중국 남부지방에 거주
2차 이동 다수의 몬족, 미얀마 남부에 자리
3차 이동 버마족, 티벳산맥 남쪽 강주변 정착
4차 이동 12세기경 타이족 메남강 따라 내려와
2019년 11월 27일(수) 04:50
미얀마의 바간 평원에는 현재 2300여개가 넘는 파고다와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퓨왕조의 보보지불탑전경




미얀마 땅에는 과연 언제부터 인간이 살았을까? 현재 미얀마에서 나타난 종족들은 본래 미얀마에서 영장류로서 수 백만년 전에 태생되었거나 인도나 중국에서 이동해 온 것으로 이해한다. 오래전 인류는 살기 좋은 곳으로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옮겨 다녔다. 아시아의 북반부에 살고 있었던 몽골리안들도 수차례에 걸쳐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1차 이동으로 중국의 남부지방에 거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아직 미얀마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경에 2차 이동을 하여 남쪽 바다 쪽으로 더 내려와 말레이족이 되었고, 다른 일부는 메콩 강과 메남 강 유역에 자리를 잡아 몬-크메르족이 되었다. 이때 다수 종족의 하나인 몬족이 미얀마 남부에 자리하였다.

그 후 기원전 1세기경인 3차 이동에 의해 미얀마의 주요한 종족인 버마족들이 오늘날의 미얀마 북부와 중부에 실질적으로 유입하게 되었다. 원래 그들은 북쪽 티벳산맥 남동 경사면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에야와디 강을 따라 내려오고 강 주변에 정착했다. 아무래도 따뜻하고 풍부한 남부지방으로 강을 따라 내려오고 강 주변에 정착한 것이다. 그 후 12세기경 몽골리안의 마지막 4차 이동은 중국 남부 난차오 지역에 살고 있던 타이 족에 의하여 발생했다. 그들은 메남강을 따라 내려와 오늘날의 태국을 장악하였다. 몽골리안의 4차 이동에 의하여 동남아시아 전체에 큰 변동을 가져왔고 미얀마는 태국이라는 숙명적 라이벌을 맞이하게 된다.



몬족과 쀼족, 라카인족의 등장

미얀마 고대 도시국가는 중북부의 쀼(Pyu)족 왕국, 남부의 몬족 왕국 그리고 서부의 라카인(Rakhine) 왕국 등이 있다. 연대순으로는 몬, 쀼, 라카인왕국의 순으로 건립되었고 나중에야 중심 종족인 버마족이 형성되었다. 특히 티벳-미얀마족에 속하는 ‘쀼족’은 기원전 1세기경 티벳산맥의 남동쪽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 온 후, 오늘날의 미얀마 중·북부 지방의 에야와디강 유역에 정착하여 ‘베익따노’, ‘뜨예케뜨야’ 등지에 도시국가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9세기에 중국의 ‘난차오’로부터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쀼족도 사라졌다. 오스트로-아시아계에 속하는 ‘몬족’은 육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내려와 메콩강 주면의 서부지역을 장악해 3세기경 오늘날 미얀마의 남부 지방인 ‘뚜원나부미’, ‘타톤’ 등지에 정착했다.

‘라카인 왕국’은 미얀마의 서쪽 라카인산맥 너머에 기원전 2세기 전후에 건립됐다. 라카인 인들은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석가모니가 라카인 왕국을 방문했다는 전설과 그 이전부터 시작하는 왕들의 연대기를 이야기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프톨레미(Ptolemy)의 기록과 발굴된 유물들은 동남아에 인도의 문화가 전파되는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이곳에 왕국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라카인은 인도인들의 중요 교역도시 중에 하나로서 발전하였고 인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나름의 자체문화를 형성한 왕국이었다.



바간 왕조

8세기경 티벳-미얀마족 계통의 미얀마족이 히말라야 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849년 삔뱌왕 때 미얀마 중북부의 흩어진 쀼족을 흡수하면서 바간지역에 버마족 최초의 왕조를 세웠다. 버마인들이 638년을 원년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도 이미 일부 버마족들이 들어와 부족국가 형태가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강력한 제국 형태의 왕조 설립은 1044년 아노야타왕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지도자였다. 그는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국교로 정하여 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이룬 뒤 몬 왕국들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타톤왕국을 시작으로 남부의 여러 왕국들을 하나씩 흡수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특히 바간왕조는 약 4,400개의 불교 유적을 건설하는 등 불교문화와 건축,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이다.

그러나 13세기가 되면서 바간왕조는 급격하게 쇠퇴해갔다. 강성하였던 바간 제국의 왕들은 교만하였고 통치는 게을렀다. 사원에 과도한 토지를 주어 세입은 줄었고 불교는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 분쟁하였다. 이런 내부적 분열로 중국을 장악한 몽고족에 의하여 무너지고 바간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인와 왕조와 바고 왕조

강력했던 통일 바간왕조의 쇠퇴 후, 14세기 무렵 미얀마의 중북부 지역에는 샨족에 의한 인와 왕조가 설립됐다. 이후 남부지역에는 몬족에 의한 바고 왕조가 들어섰다. 이런 과정에서 약 40년간 두 왕조간의 전쟁을 치르게 되는 등 미얀마 전역이 혼란과 분열의 시기를 보내었다. 그 후 200여년간 샨의 인와왕국과 몬의 바고왕국은 미얀마를 양분하여 남북시대를 이끌어 가게 되었다.

두 왕조는 전쟁을 이어갔으나 나름 국경을 정하고 수로공사를 통하여 농업생산이 많아지고 왕권의 안정을 기하였다. 인와왕조에 비하여 바고왕조는 더 오래 지속되었고 강성하였다. 바고왕조의 신소보 여왕과 그의 후계자 담마제디 왕은 왕국의 풍요함과 평화로운 시기를 문화적으로 승화시켰다. 스리랑카와 불교사절단을 교환하였고 상좌부불교를 재건하여 종족간의 통합을 이루었으며 법전도 제정하였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상인들이 동남아로 밀려들면서 바고왕국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따웅구 왕조

인와왕조와 바고왕조가 서로 대립하면서 두 왕조가 약화된 시기로 바로 윗 쪽에 있던 따웅구 왕국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따웅구왕조는 작은 왕국이었으나 1531년 미얀마 전역을 통일한 후, 바간 왕조에 이은 두 번째의 통일왕조를 이루었다. 따웅구는 큰 강에 접하지 않았고 자원도 많지 않았으며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적의 침입으로 노출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바간왕국의 멸망이후 위축된 버마족들은 따웅구로 모여들기 시작함으로서 버마족이 재도약하는 왕국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찾아 동남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시기와 맞물려 수도를 항구도시 바고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적은 중부 내륙지역의 인와로 옮긴 후 100여년간 따웅구왕조는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꼰바웅 왕조

혼란과 분열의 시기인 18세기 중엽, 알라웅파야에 의하여 미얀마 전국은 통일 되었다. 중북부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긴 사이 버마족 출신 알라웅파야가 신임을 얻어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새로운 왕조 ‘꼰바웅’ 시기엔 한때 강력한 군사력으로 태국을 침략하고, 미얀마의 서부 산악지역인 라카인 왕국을 영토에 병합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남부 몬족의 도시들을 점령하고 몬왕국을 멸망시켰다. 이 때 몬족들은 국경을 넘어 타이족의 아유타야로 도주했다. 왕국은 통일되고 영토는 바간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융성하였다. 1872년 평화주의자 민돈 왕 당시에는 세계 제5차 불자대회(경전결집)를 개최하며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도 하였지만, 영국과의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모두 패한 후 잠차 국력이 쇠퇴하여 결국 꼰바웅 왕조는 1885년 무너지고 그 후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왕의 가족은 우마차에 실려 인도 봄베이로 추방되었고 인도의 한 주로 편입되고 말았다.

<전남대 건축학부 연구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