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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으로 가득 채우자
2019년 11월 15일(금) 04:50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주머니 속의 따뜻한 손난로가 지친 삶의 온기를 높여주고 정다운 친구의 다정스런 안부 전화 한 통이 내면의 기쁨을 배가시켜주는 계절이다.

문득 교당 앞마당의 나무들과 꽃들을 바라보며 식물들은 어떻게 겨울을 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무들은 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한다. 기온이 내려가면 광합성(탄소 동화 작용)기능이 떨어지는 잎을 떨구어 최소한의 잎만 유지하며 필요한 에너지(유지 비용?)를 최소화하고 아울러 체내의 수분량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으로 최소화한다.

그리고 체내의 물(樹液)에 당(설탕 성분)의 비중을 월등히 늘려간다. 당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어는 점이 낮아지는 것은 민물에 비해 바닷물(소금물)의 어는 점이 더 낮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당의 함량이 높아진 수액은 자동차의 부동액과 같이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게 된다.

이처럼 겨울은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생존을 위해 함축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겨울을 본래면목(本來面目)의 계절이라고 한다. 자기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겐 계절이 없다. 한겨울에 딸기를 먹고 수박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유전자가 자연과 역행하는 유전자로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치료가 어려운 새로운 병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생을 놓고 보면 황혼기가 본래면목의 계절에 더 가깝다. 그런데 노인들은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이 많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이 찾아온다.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열다섯 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영향을 몸에 미친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외로움 담당 장관이 생겼다고 한다.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한다. 우체국 집배원들이 노인들을 찾아가 대화를 하고 집안일도 도와준다고 한다.

다정도 병이지만 외로움은 더 큰 병이 되기도 한다. 자연 속의 나무들은 누가 말동무를 해주지 않아도 잘 사는데 유독 사람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혼자 있다는 것은 밖으로 향하는 시선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것이고,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 반면에 홀로 있다는 것은 안으로 향하는 시선이며 나 자신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고독과 관계가 있다. 또한 외로움이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면 고독은 절대적이고 존재적인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워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만 홀로 있을 때는 겨울 숲처럼 함께 있으므로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항상 홀로 있을 때이다. 홀로 있음의 시작은 통찰의 시작이다. 통찰에서의 통자는 통할 통(通)자를 쓰지 않고 삼수변에 같을 동자, 동굴 동(洞)자를 써서 통찰(洞察)이라고 한다.

예전에 우물을 공유한 공동체가 동네였고 인류의 원초적 동네는 동굴이다. 동굴 속에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을 통찰이라고 하는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자비가 함께하지 않으면 독단이라는 것이다. 자비가 우리 마을에 머물면 동장, 부녀회장이 되는 것이고 광주광역시 전체에 머물면 광주광역시장이 되고, 대한민국에 머물면 대통령이 되며, 인류에 머물면 성인이 되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 세상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우리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라고 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옛말도 있다. 본래면목의 계절에 비움을 통한 통찰로 위와 아래가 없는 절대의 마음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겨울이 되기를 심축한다.



/정세완 원불교 농성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