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과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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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광주
2019년 11월 13일(수) 04:50
지난 여름, 독일 문화관광의 현장을 둘러 보기 위해 베를린의 이스트갤러리를 찾았다. 관광 하기엔 조금 이른 오전 시간이었지만 이스트갤러리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인파로 북적였다. 이들은 높이 3.6m의 장벽에 그려진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1989년 11월 9일 붕괴된 ‘그 날’을 기억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스트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이다. 서베를린을 포위했던 총길이 160km의 장벽중 약 1.3km구간을 복원해 자유와 평화를 주제로 한 전 세계 예술가 100여 명의 다양한 그림을 펼쳐 놓았다.

이스트갤러리 투어를 마치고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공원이었다. 정식명칭은 ‘학살된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위한 기념공간’. 독일의 행정·정치·외교 중심가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원은 독일 연방의회가 나치정권 당시 학살 당한 유대인 희생자 600만 명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유대계 출신인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은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의 묘석을 상징하기 위해 축구장 세 배 크기의 거대한 광장에 가로(95㎠), 세로(238㎠) 크기의 2711개 구조물을 세웠다. 당시 독일의 수도 한복판에 수 천개의 돌기둥 ‘무덤’을 짓는 ‘전무후무한’ 구상은 뜨거운 쟁점이 됐지만 독일 정부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부끄러운 과거라도 감추지 않기 위해서였다.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원 입구에 들어선 순간 수많은 구조물들이 늘어선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압도된다. 무릎 높이에서 시작한 구조물은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처럼 키를 훌쩍 넘긴다. 이 때문에 걸터 앉을 만큼 낮은 구조물이 안으로 들어가면 높이가 4m를 넘어 움푹 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기둥 사이 사이를 거닐다 보면 알 수 없는 먹먹함과 아득함이 밀려든다.

지난 9일은 베를린 장벽이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독일 정부와 베를린 시는 4~10일까지 30주년 기념식을 필두로 30주년 기념 축제 등 대대적인 공식 이벤트를 선보였다. 이 기간에 장벽 붕괴 관련 행사가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독일 사회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했다. 특히 30년 전 동독 민주화를 외친 시민들의 발자취를 재현한 ‘평화혁명의 여정’(The route of the peaceful Revolution)은 하이라이트였다. 불행한 역사이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현장과 다크투어리즘으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년은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매년 광주에서도 5·18을 기념해 5월 한달동안 추모, 학술, 문화예술 등 5개 분야에서 51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개별 단체의 연례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지나친 엄숙주의로 인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오는 202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전국화를 넘어 세계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과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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