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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임수진 동신대 유아교육학과 교수] 어떤 태도
2019년 11월 07일(목) 04:50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임명과 검찰의 수사 과정, 공수처 설치 등을 둘러싸고 무수한 정보가 오간다. 언론의 보도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도 무엇이 사실인지, 혹은 진실을 향하는지 구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피로감이 쉼 없이 이어지는 날을 보내던 중에, 오래 전에 읽은 책 속의 한 인물이 떠올랐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영문 제목 Atonement) 속 인물, ‘브리오니’다. 허구 속 인물인 브리오니를 지금 다시 불러온 것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고, 아는 것과 믿는 것,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보는 것과 보고 싶은 것 사이를 보여주었던 이 소설 속 이야기처럼, 우리 역시 ‘어떤 사건’에서 시작해 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1, 2, 3부 그리고 ‘1999년 런던’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의 ‘그 사건’에서 시작하여 ‘1999년 런던’의 후반부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만나 한 줄기로 이어진다. ‘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35년 더운 여름날, 열세 살의 소녀 브리오니 탈리스는 언니 세실리아와 탈리스가(家)의 오랜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데다 섣부르고, 아직 어른의 사랑을 이해 못 하는 브리오니는 그 상황을 오해하고, 때마침 발생한 친척의 강간 사건의 범인이 로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브리오니의 무모함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세실리아와 로비, 그리고 브리오니의 삶은 제2차 세계대전의 혼돈과 맞물려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왜 브리오니는 이러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현상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품고 있던 기대와 동기, 현실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사건을 해석한 데 기인할 것이다. 거기에는 감정과 그렇게 믿고 싶은 편협한 마음이 있을 뿐,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없었다. 이는 자신의 감각과 지각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브리오니가 그랬듯, 우리는 자신의 인식(혹은 선입견이나 편견)에 근거를 둔 판단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참된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에 의해 재구성된 것을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오인하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이라는 이름을 걸고 주어진 사실이 때로 거짓이거나 거짓이 섞여 있을 수 있음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우리는 일상적 관심사에 따라 관련된 대상에만 시선을 둔다. 따라서 보려고 하는 개별 대상에만 시선을 쏟은 나머지 배경을 이루는 전체로서의 세계를 도외시하게 된다. 이를 두고 철학자 후설은 이 세계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습관적 믿음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습관적 믿음에 기대어 최근의 여러 사건과 현상을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시간이 지나 브리오니는 진짜 ‘진실’에서 눈을 돌린 채 무지와 허위, 고집으로 가득한 선택을 한 자신의 판단이 되돌릴 수 없는 죄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으로 인해 일그러져 버린 세계에 속죄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 사건’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을까?

여기에 멈춰 서면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판단 중지(epoche: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설 현상학의 주요 개념)’이다. 주어진 정보 혹은 사실을 기초로 어떤 사안에 대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판단의 주체인 자신이 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의 사건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것이 올바른 결정이고, 실행인가?’라는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내가 ‘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상을 향하던 시선의 방향을 돌려 자신의 의식을 되돌아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객관적 사실이나 정보, 혹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등을 통해 자신이 구축해온 편향성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기저를 성찰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상식이나 사실에 기반한 추측이 사실이 아닐 수 있고, 진실을 향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일 때, 그 지점에서 다시 바라보기를 시작할 때, 현상은 자신의 본질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줄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적 ‘태도’야말로 혼돈으로 가득찬 현실에서 자신과 세상을 재발견하는 지평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