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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 그때와 오늘의 한국 교회
2019년 11월 04일(월) 04:50
[양 홍 화평교회 원로목사]
종교 개혁 502주년을 맞이한다. 원인과 근인이 있기는 하지만 약 반세기 동안 일어난 전 구라파 교회의 개혁 운동을 종교 개혁이라 부르고 있다. 마르틴 루터를 선두로 한 독일의 종교 개혁, 츠빙글리와 칼뱅을 중심으로 한 스위스 종교 개혁, 그리고 존 녹스를 중심으로 한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16세기 종교 개혁을 루터의 종교 개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루터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날의 기록을 보면 1517년 10월 31일 정오경 두 젊은 수도사가 비텐베르크 시의 교회 정문에 나타났다. 한 사람은 비텐베르크 대학 슈나이더 교수고, 또 한 사람은 루터 선생이었다. 그때 루터의 나이는 35세였다. 이 교회는 비텐베르크 대학 부속 교회였고, 이 정문에 라틴어로 써진 서류를 꺼내 못을 박았다. 이 서류가 바로 95개조 논제였다.

16세기 종교 개혁의 중심 사상은 신앙의 권위를 제도적인 교회에서 성경으로 환원시킨 개혁이고,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개인 신앙 구원의 복음을 다시 찾는 개혁이며, 만인제사 즉 성직뿐 아니고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라는 성속 폐지다.

그리고 종교 개혁의 과업 성취는 루터의 교황청 탈출과 성서 번역, 칼뱅의 기독교 강요 등 기독교 교의 집대성, 녹스의 장로교 조직과 민주 정치 수립으로 볼 수 있다.

이 95개의 주제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나니 곧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이다.

교황청의 타락과 거짓, 미신과 사기를 향하여 그것이 아니라고 감연히 일어선 것이 95개 조문으로 루터의 종교 개혁이었다.

하나님의 의를 믿으면 복 받고 병도 낫고 불로장수하고 자손창성한다는 복음이 아니고 죄인도 의롭다 하시며 세리, 창기, 고아, 과부, 강도, 그리고 살인자까지도 다만 믿음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주신다는 복음이다. 이 복음이 용서의 복음, 신생의 목음, 구원의 복음, 영생의 복음이다.

루터는 그때의 부패와 불의에 항거하여 하나님의 의를 외치며 일어났다. 그것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개신교)의 신앙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는가, 목숨 걸고 찾은 성경은 먼지 속에 파묻혀 있지 아니한가, 나를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 우리 마음 속에 고갈돼 가고 병든 사회와 세계의 낙원으로 회복한 능력이 매장되어 있지 않는지.

말씀으로 돌아가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각자 자신으로 돌아가 끝없는 분열을 일삼고 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대신 이 세계에서 불의와 악의 세력을 보고도 못 본 체 침묵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의를 위한 십자가가 싫어서 타계적 신앙이나 신비주의의 동굴, 십자가 없는 이론적 사회 윤리와의 염불에 합창하고 있다. 부패, 부정, 불의, 허위로 꽉 찬 이 사회에서 도덕, 경제, 정치,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참 정의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 교회는 무슨 항거, 무슨 도전, 무슨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오늘 속죄부를 파는 텟첼은 없으나 복음을 함부로 파는 속죄부 판매인은 많다. 믿음은 세속적 행복을 얻는 속죄부, 만병을 고치는 생명수 속죄부, 환란에도 피난하여 죽지 않는 천년생 속죄부, 성령을 물상화하는 원시적 미신 속죄부, 독약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불사의 속죄부, 회개 없는 구원의 속죄부, 십자가 없는 부활과 영광의 속죄부를 대량 생산 판매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는 다시 종교 개혁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찾아야겠다. 그것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확신이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의에 산 사람이다.

정치가는 경륜으로, 상인은 이익으로, 학자는 지식으로, 군인은 무력으로 산다. 그러나 의인 크리스천은 믿음으로 산다. 이 믿음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다이내믹한 종교 개혁은 그때나 오늘이나 사람들의 전진이기 때문에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또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