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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 생각
2019년 10월 25일(금) 04:50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그렇게 젖어 버린 습관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안 했으면 하는 행동을 하며, 옳고 그름의 힘을 잃어버려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습관으로 굳어 버린 말, 행동, 생각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습성에 젖어 있는가?

평상시에 어떤 말을 하는가? 쌍스러운 욕이나 타인을 흉보는 것에 습관 되어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을 쉽게 뱉어 내고 못된 소문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어떤 말은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힘들게 하거나 고통을 주기도 한다. 또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말들을 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예수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사람의 품성과 자질은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주머니 속의 송곳’,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말이 그 사람의 품성과 자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평상시에 어떤 행동을 하는가? 해외 연수를 떠났던 경북 예천군 의원들의 추태가 떠오른다. 그들의 추태는 예천군민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특히 이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담긴 버스 CCTV 영상에서 가이드에게 행하는 폭행 장면은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한 의원이 가이드를 폭행한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구경하듯 방관했던 다른 의원들의 모습에 더 분노가 치밀었다. 왜 그렇게 거만하고 쌍스러우며 폭력적일까? 원래 그들의 평상시의 행동이었지 않았을까? 이들의 추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방의회 의원은 당연히 봉사직이었다. 그런데 권력을 차지하고 또 거기에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다 보니 이 추태의 결과가 초래된 것이 아닐까? 의원이라는 힘을 빌려서 타인을 짓누르는 비겁하고 거만한 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 이들 평상시의 행동이 그랬을 것이다. 예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위선자라고 호되게 야단치며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알겠다. 평상시의 행동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내면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평상시에 어떤 생각을 하는가? 대부분의 말과 행동을 지배·통제하는 것이 생각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평상시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은 판단과 연결되고, 판단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기까지 한다. 그러면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남편과 아내에 대해 평상시에 했던 생각이 그렇다고 믿어 버리기가 일쑤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 남편을 다른 사람에게 흉보거나 욕을 하는 것은 평상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물질,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존재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인식한다. 그러나 물질과 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는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으로 고착되고 잘못된 생각이 옳지 못한 믿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예수는 구원받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10월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와 함께 ‘특별 전교의 달’로 선포하였다. 신앙은 신앙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전해진다. 가톨릭 신자가 되겠다고 오는 분들에게 입교의 이유를 물으면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고 입교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정확한 전달, 올바른 전달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되고,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말과 행동과 생각의 반성이 필요하다.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본질을 살아가도록 서로가 돕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말과 행동과 생각이 중요하다. 타성에 젖기 쉽고 습관으로 굳어 버리기 쉬운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자주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질 것이다.

/황 성 호 영암 신북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