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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3일(수) 04:50
로마시대 최고의 전성기를 ‘오현제(五賢帝) 시대’라고 한다. 네르바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서기 98~180년)다.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 흘렀던 시기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태평성대의 비결 가운데 하나는 부자 세습이 아닌 양자 상속에 있었다. 오현제 시대를 연 네르바는 아들이 없기도 했지만, 원로원 의원 가운데 덕망 있고 총명한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줬다. 세 번째 황제인 안토니우스 피우스는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지만 양자 상속제를 따랐다. 결국 이 관습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이어져 선정(善政)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가 양자 상속을 어기고 아들인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세우면서 로마제국 쇠락의 씨앗을 틔웠다. 콤모두스는 네로와 칼리굴라를 능가하는 폭군으로 악명을 떨쳤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도 확인되듯이 황제이면서도 수도자와 같은 무결점 생활을 했다.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황제였지만 그의 아들이 최악의 황제가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늘 자식 때문에 분란이 일어난다. 금호그룹이 사실상 계열 분리된 것도 형제 상속의 원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박성용 회장부터 3남인 박삼구 회장까지는 창업주의 유훈에 따라 형제 상속이 지켜졌지만 박삼구 회장 때 부자 상속 움직임을 보이자 4남인 박찬구 회장이 반발하면서 그룹이 분리됐다.

요즘은 ‘아빠 찬스’니 ‘엄마 찬스’니 하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조국 법부무장관이 낙마한 것도 딸이 대학 논문의 1저자가 됐다는 비판 때문이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딸의 대입 부정입학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역에선 전남대병원의 채용 비리가 ‘○○찬스’라는 말로 국정감사에서 화제가 됐다. 병원의 사무국장이 아들과 조카를 채용하는 데 관여한 것도 모자라 다른 간부와 함께 서로 상대편 아들 면접관으로 들어가 최고 점수를 주는 ‘품앗이 채용’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 찬스도 없는 청춘들의 상실감은 어찌 할까.

/장필수 전남본부장 bu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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