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정신과 한국 전통미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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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정신과 한국 전통미가 만나다
광주시립미술관 12월8일까지 ‘이영재-비우고 채우고 비우고’전
47년째 독일서 거주 …100년 역사 마가레텐회에 공방 대표
두개 사발 붙인‘방추형 항아리’ 눈길…쾰른 베드로 성당서 작품 사용
2019년 10월 21일(월) 04:50
독일에서 47년째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영재 작가가 하정웅미술관에 펼쳐놓은 287개의 사발과 접시는 설치작품처럼 보인다.
독일에서 47년째 머물며 활동중인 이영재 작가.




두개의 항아리를 이어붙인 ‘방추형 항아리’










1층 중앙 전시실로 들어서면 은은한 조명 아래 다양한 형태와 빛깔의 도자기를 만날 수 있다. 모두 287개에 달하는 사발과 접시다. 한 작가의 가마에서 같은 흙으로 빚어진 오묘한 빛깔의 도자기들이 바닥에 불규칙하게 놓인 모습은 설치미술을 연상시킨다. 또 다른 전시실엔 핀 조명 아래 놓인 작은 찻상 위 ‘하얀 사발’ 딱 한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가 정안수 떠놓고 빌던 모습이 떠오른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디아스포라작가전 ‘이영재-비우고 채우고 비우고’가 오는 12월 8일까지 열린다. 디아스포라 작가전은 우리나라 출신으로 해외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를 초대해 예술을 통한 역사와 문화교류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기획이다.

서울 출신으로 수도여자사범대학교를 졸업하던 1972년 간호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독일로 건너간 이 작가는 100년 전통의 독일 마가레텐회에 공방 대표로, 동서양의 정서와 미감이 결합된 독창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독일 에센 지역 폐광으로 세계문화유산 졸퍼라인에 자리한 마가레텐회에는 바우하우스 이념을 계승하는 100년 전통의 공방으로, 독일 내에서 역사와 전통을 높게 평가받는 곳이다.

특히 이 작가가 빚은 잔은 쾰른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용 술잔으로 사용중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요셉 보이스와 친분을 유지하는 등 동시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성당을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꾸민 베드로 성당 신부의 의뢰를 받은 이 작가는 다섯달 동안 770개의 잔을 만들었고, 공방에 ‘열병식 하듯’ 놓인 작품 속에서 신부는 아홉개를 선택해 1999년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때는 브랑쿠시 같은 조각가가 되고 싶었죠(웃음). 하지만 곧바로 도자기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도자기를 배우는 독일인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독일과 한국의 물레 돌리는 방법이 달라 고생하기도했지만 제 방식을 고집하며 저만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저희 공방은 바우하우스에서 공부한 이들이 시작한 곳이라 바우하우스 이념을 실현하고 있어요. 단순한 형태로, 일상에서 직접 사용하는 ‘쓰임으로서의 도자기’를 만들어냅니다.”

개막식 참석 차 광주를 찾은 이 작가의 말이다.

소박함과 자연미가 특징인 한국 도자와 독일의 실용적 태도를 결합한 간결하고 세련된 조형미는 이 작가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작 중 독특한 작품은 두 개의 사발을 결합시킨 ‘방추형 항아리’로, 지금까지 온화한 곡선미의 항아리에 익숙한 이들에겐 낯설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녀는 ‘1+1=1’이라는 화두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고, 그 고민들을 녹여낸 게 따로 빚은 사발 두 개를 대칭적으로 이어 붙인 방추형 항아리로, 이음새의 각진 모습과 사발의 곡선이 어우러져 독특한 조형미를 만들어낸다. 그밖에 소박하게 빚은 ‘꽃병’ 시리즈는 화려하지 않은 문양과 다양한 형태가 눈에 띈다.

매끈한 질감이 돋보이는 이 작가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건 다채롭고 은은한 색감이다. 특히 방추형 항아리의 경우 이어붙인 두 개의 사발이 같은 듯, 다른 색감과 표면을 만들어내는 게 흥미롭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영상물도 눈길을 끈다. 독일 본 예술대학 메네케스 교수 등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에서는 이 작가의 작업장과 전시 연출 모습, 작품 철학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자신을 ‘도공’이라 칭하며, 피아니스트들이 연습곡을 치듯, 날마다 작은 크기의 도자기를 만들어가며 단련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자신에게 도자기를 빚는 건 입술을 만들고, 배를 만드는 등 ‘몸’을 빚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비스바덴미술대학에서 도예와 디자인을 전공한 이 작가는 카셀대학교 도예과 연구 교수를 역임했으며 폴란드 브로츠와프 미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뮌헨 현대미술관 등 주요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했고 유럽 5대 화랑 중 하나인 칼스텐 그레브 소속작가로 활동중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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