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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양근석 전남도 해양수산국장] 10월 26일, 기억해야 할 역사의 ‘그날’
2019년 10월 21일(월) 04:50
어느 누구에게나 가슴 뜨거워지는 ‘그날’이 있다. 각자의 삶의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한 ‘그날’들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날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첫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이거나 혹은 10월의 마지막 날처럼 ‘그날’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문다.

필자에게는 10월 26일이 바로 ‘그날’이다. 필자의 가슴에 10월 26일은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하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역사적인 그날’이다.

올해로부터 422년 전인 1597년(선조 30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 명량해전이 있었다. 음력 9월 16일은 가장 빠른 물살로 해남·진도 울돌목의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졌다. 거친 소용돌이만큼 울돌목의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을 것이다. 왜적의 군함은 133척. 우리 수군의 군함은 겨우 13척에 불과했다. 연이은 패전으로 병사들의 공포심마저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이겨냈다. 지형과 조류의 흐름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일본 수군은 절대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무려 31척의 군함이 파손되고 8000여 명의 병사를 잃고 도망치다시피 퇴각했다.

충무공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군함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맞서 싸운다면 오히려 막아낼 수 있습니다”라는 장계를 올리고 죽을 각오로 적에 맞서 싸웠다.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수군폐지론을 운운하며 조선의 운명을 놓고 정쟁 중에 있었다고 하니 충무공의 외로움은 더욱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날의 승리로 인해 일본 수군의 서해 진출은 완벽히 차단되었고 훗날 임진왜란에서 일본을 퇴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역사학자들은 이 해전을 ‘명량대첩(鳴梁大捷)’이라 명명했고 우리는 이날을 명량대첩 축제를 통해 매년 기리고 있다.

이날로부터 312년이 지난 1909년 10월 26일 또 한번 ‘역사의 그날’이 시작된다. 오전 9시 30분 만주 하얼빈역에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을사늑약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가 쏜 총에 맞고 쓰러진 것이다. 권총을 발사한 후 ‘대한제국 만세’라는 뜻의 러시아어 ‘코레아 우라’를 목 놓아 부르짖다 체포되었다고 하니 안중근 의사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이 느껴져 가슴 뜨거워지는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는 의거일 이후 불과 5개월만인 1910년 3월 26일 일제에 의해 순국하셨다.

그로부터 다시 11년이 지난 1920년 10월 26일 또 한 번의 역사적인 그날이 있었다. 두만강 상류에 위치한 청산리 일대에서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을 대파한 날이다. 바로 ‘청산리대첩’이다. 1910년 강제 합병 이후 무장 독립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승리였다. 10월 20일부터 무려 6일 동안 10여 차례 밤낮을 쉬지 않고 일본군에 맞선 독립군은 독립을 위한 열망 하나로 백전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당시 일본군은 독립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2만여 명의 ‘월강추격대’까지 편성해 청산리까지 추격해왔다. 우리 독립군 연합부대는 마치 쫓기는 척 유인술을 펼쳐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 ‘봉오골’로 유인해 그야말로 박살내 버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 다른 10월 26일은 우리 민족을 지켜낸 날들이다. 이날들이 있었기에 우리 국토에서 우리 민족끼리 우리말과 글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고 일방적인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안가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펼쳐 왔다.

현재 일본산 화장품과 맥주의 매출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패션과 자동차 분야 또한 하락세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관광산업을 주 소득원으로 하는 일본의 소도시들은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만으로 이루어 낸 결과이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10월 26일의 그날들을 기억하며 마음 속 깊은 우국지심(憂國之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