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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인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늙은 여자들의 시간
2019년 10월 15일(화) 04:50
“지금까지 이룬 게 없으면 이후에도 이룰 게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면 이제 그만해도 돼!” 연로한(?) 연구자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주변에는 정년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안 하던’ 공부를 해서 대작을 내겠노라 수선을 피우는 이들이 적지 않고, 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책 속에서 몸을 빼지 못하는 ‘천생 서생’들도 더러 있다. 저 우스갯소리는 이 두 부류를 염두에 둔 말일 텐데, 사실은 좀 더 잘 ‘늙는 삶’을 꿈꾸는 자신들을 향한 것이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후라고 해서 이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새 삶을 향한 태도나 다짐, 더 나가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내 삶에서 좀 더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당나라 시인 백낙천(772~846)은 자신을 향한 ‘자경시’(自警詩)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에 늙어 고치 되어도 제 몸은 못 가리고/ 벌은 굶주리며 만든 꿀 다른 이가 차지하네/ 알아 두세, 늙어서도 집안 걱정 하는 자/ 두 벌레의 헛수고 같다는 것을.” 이 시는 내가 아니면 그 학문이 폐기될 것처럼 여기는 자, 내가 아니면 강의실이 폐쇄될 것처럼 구는 자, 세상의 ‘임무’를 놓지 못해 동분서주하는 자칭 석학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다. 외부의 가치나 평가에서 자유로워야 진정한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년 인구가 급증하면서 어떤 노년을 살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노년도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좌의정을 지낸 심수경(1516~1599)은 나이 80에 아들을 낳았다. 남아 있던 벗들이 축하 글을 보내오자 “75세 생남(生男)도 세상에 드문데 어이하여 80에 또 생남했나”라며 축하 말고 웃기나 하라는 답시를 보낸다. 한 생명의 탄생을 희화화하는 이 노인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늙음을 긍정하라는 말은 ‘여전한 젊음’을 과시하기보다 늙음 그 자체를 성찰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물학적인 젊음으로 향한 시선은 역설적이지만 현재의 늙음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장계향(1598~1680)은 말과 손으로 전하던 자신의 조리법을 더 이상 전수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르자 73세에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여 각 가정에 필사해 가도록 한다. 임윤지당(1721~1793)은 65세가 되자 평생 써 온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낼 작업을 한다. 그 작업의 변에서 “비록 식견이 천박하고 문장이 엉성하여 후세에 남길 만한 투철한 말이나 오묘한 해석은 없지만, 내가 죽은 후에 장독이나 덮는 종이가 된다면 또한 비감한 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생물학적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젊은 삶’과 다른 ‘늙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지난여름에는 연구 그룹의 여자들과 3박4일 일정의 여행을 다녀왔다. 연구와 강학이 여유로워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도 남들처럼’ 놀고먹는 다정한 시간을 가져 보자는 것이었다. 나이도 학교도 전공도 제각각인 다섯 여자들은 20년 전 혜화동 다락방에서 처음 만나 ‘여성 이론 제조’에 청춘을 바친 멤버들이다. 이곳은 서구 페미니즘 이론에 취약했던 나에게 학위 이후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많은 성취를 이루게 해 준 중요한 공간이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고 비평하는 가운데 다투고 울고 웃는, 길고 긴 시간을 함께해 왔다.

이미 본색을 다 드러낸 이들에게 여행지라고 해서 낯선 뭔가가 있을 리 없다. 회를 좋아하는 자를 위해 함께 회를 먹고, 구운 생선만 먹는 자를 위해 같이 생선을 먹으며,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자에게 계란을 몰아주는 등. 새벽에 산책을 하는 사람은 그대로 하게 하고, 저녁에 동네를 거니는 사람은 또 그대로 하게 하며, 음악을 듣거나 소설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잠을 자거나. ‘에어비앤비’ 이국의 아파트에서 20년 지기 늙은 여자들의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돌이켜 보니 나는 공부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벗을 얻으러 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