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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인칭의 자리 윤해서 지음
2019년 10월 11일(금) 04:50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윤해서 작가가 ‘0인칭의 자리’를 발간했다. 그동안 작가는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 ‘암송’을 통해 시적인 사유와 현학적인 문체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엄청난 독립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평을 얻은 첫 소설집 ‘크러스크로노스’ 이후 꾸준히 다듬은 장편이다.

윤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해석이 가능한 서사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끊임없이 사유하며 서사 속에서 헤매는 일이기도 하다. 문장을 읽어내는, 언어가 만들어낸 공간을 탐사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무엇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엇도 찾을 것이 없”음을 받아들이라는 작가의 목소리는 “생각하는 나마저” 지워버려야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어린 시절, 카메라 속 어머니의 눈에서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발견한 남자가 성인이 돼서도 그것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눈빛을 프레임에 담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그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작가는 과연 이 소설을 통해 삶의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작품의 제목이 씌어진 의미와 관련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의 목소리, 무관심한 에피소드의 전개 등은 전통적 독서로는 의미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작업은 문학이 ‘타자가 되어보기’라는 불가능한 영역을 언어라는 공간에서 구축해내는 것에 다름아니다. 인물과 에피소드가 누적될수록 모든 이야기는 잘게 부서진 조각이 아닌 거대한 조감도의 일부로 다가온다. 또한 “0과 1사이”의 위치에서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진폭만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다. <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