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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가득 흙탕물 범벅 전쟁터 방불…“이런 날벼락 처음”
르 포 - 태풍 ‘미탁’에 최악의 물난리 겪은 완도
밤새 물 퍼내느라 기진맥진…철물점 주인은 젖은 제품 보며 허탈
58동 침수피해…주민들 “지자체가 사전대비 철저히 했어야” 분통
2019년 10월 04일(금) 04:50
제18호 태풍 미탁이 지나간 3일 오전 침수 피해를 입은 완도군 완도읍 한 주택에서 장보고부대 장병들이 청소와 집 정리를 하고 있다. /완도=최현배 기자choi@kwangju.co.kr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 모르것네.”

3일 오전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김진원(74)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김씨는 전날 밤 제18호 태풍 ‘미탁’이 몰고 온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폭우가 몰고 온 물이 집안으로 들이닥쳐 무릎까지 찬 뒤, 태풍이 물러간 아침에서야 빠졌다. 집안은 전쟁터였다. 누전 위험을 생각해 모든 전기는 이미 끊은 상태였고, 냉장고의 음식들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김씨가 아무리 대걸레로 닦아내도 장판은 밟을 때마다 물이 올라와 온통 흙탕물 투성이었다. 안방의 벽지에는 무릎 높이까지 찼던 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김씨는 대민지원을 나온 장병 20명과 함께 소파·냉장고·식탁·침대 등을 힘없이 옮기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평생을 완도에서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 봤다”면서 “어제 화장실이랑 모든 배수구에서 물이 차올라 방안으로 들어왔다”고 간밤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물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손도 못대고 대책 없이 있었는데, 간조 때가 되니 겨우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며 “밤새 물을 퍼냈지만 소용이 없어 포기하고 새벽녘에 잠깐 눈만 붙였다. 당장 오늘 밤이 걱정이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완도읍내에서 12년 동안 철물점을 해온 박이수(63)씨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빗물에 잠긴 낫과 칼 등 철물점 물건들을 꺼내 하나하나 닦아내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최대한 물건들을 닦아 보려 했지만 쇠로된 제품은 물이 묻으면 녹이 슬어 팔 수가 없다”며 “특히 바닥에 둔 못이나 칼은 그냥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이 차 오른 큰길에 차들이 지나다니니까, 너울이 생겨 물이 자꾸 가게로 들어왔다”면서 “물이 차는 속도가 빨라 상품을 밖으로 빼낼 시간도 없었다”고 푸념했다.

3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완도지역에는 평균 186.2㎜의 비가 내렸다. 완도 청산도에는 2일 오전 9시 10분께부터 1시간 동안 82㎜가 내리는 등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

이 비로 인해 주택 58동(완도읍 38·금일 6·노화6·청산3·소안3·고금1·생일1)이 침수됐고, 도로 5곳이 유실됐다.

일부 주민들은 “그동안 완도는 침수 피해가 없어 축복받은 곳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며 “태풍이 오면 지자체가 사전대비를 철저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가게에서 비에 젖은 상품을 꺼내고 있던 상가 주민도 “침수 피해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군청이 대책 마련을 서둘러 달라”고 촉구했다.

완도군 관계자는 “이번 침수 피해는 대조기(보름달 무렵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 만조 시간대에 배수구의 배수 능력을 초과하는 폭우가 내려 바다로 빠져야 할 물이 역류한 것 같다”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해 복구를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완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