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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온기로 살아가듯 시 온기로 슬픔 견뎠다”
‘땅끝 시인’ 김경윤 시인 네 번째 시집 ‘슬픔의 바닥’ 펴내
33년 교직 정년 퇴임 기념 시집
사고로 세상 떠난 아들에 대한 헌시
26일 비타포엠 북콘서트 시낭송
김남주시인 기념사업회도 이끌어
2019년 09월 23일(월) 04:50






“저에게 시는 ‘밥’입니다. 밥과 시는 하나이지요. 수경 스님의 ‘공양’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죠. 춥고 힘겨운 날들을 밥의 온기로 살아가듯 시의 온기로 슬픔을 견디고 살아왔다는 것을.”

‘땅끝 시인’으로 불리는 김경윤(사진)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슬픔의 바닥’(문학들)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지난 8월 33년 동안 몸담았던 정든 교직을 떠나며 발간한 정년퇴임 기념 작품집이다. 아울러 “스물넷의 나이에 피안의 별이 된 아들 김한글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라는 헌사에서 보듯 몇 해 전 겪은 참척의 슬픔 등이 담겨 있다.

시인은 “시 덕분에 슬프고 외로운 날들 잘 견디며 살아왔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밥과 시는 하나”라는 법어 같은 같은 표현을 썼다. 무섭고 아름다운 말이다. 시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시를 밥으로 정의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고통스럽고 무정한 세월을 시를 버팀목 삼아 건너 왔다는 뜻이리라.

해남 출신인 김경윤 시인은 오랫동안 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의미있는 활동을 펼쳐왔다. 이전에는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의 문단 활성화에 기여했다. 시집 발간 소식을 전해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물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이 올해 3년을 맞아 ‘탈상’의 의미로 아들에게 바치는 시집을 발간했지요. 정년 퇴임이라는 의미도 있고, 또 하나는 올해가 등단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구요.”

“‘분필밥’ 33년, ‘시(詩)밥’ 30년을 먹고 살아온 그간의 삶을 정리하는 작품집.” 지난 4년간 잡지나 매체에 발표한 시들과 묵혀 두었던 미발표 몇 편이 묶이게 된 것이다.

이번 작품집의 주된 정조는 슬픔이다. 보내온 시집을 펼쳐보는 순간 제목이 전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던 터라 시인의 말은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그는 “내 자신을 위해서 혹은 나와 같은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곡비(哭婢)처럼 울었던 내면의 노래가 작품집이 되었다”고 말했다.

추천사를 쓴 황지우 시인도 “시란 궁극적으로 울음이다”는 명제에 도달한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럴 만도 하다. 사실 고전적인 의미의 시인은,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대곡자’(代哭者)가 아니던가.

“슬픔의 바닥을 보지 않고는/ 슬픔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지 마라/ 세상에는 어떤 말로도/ 위로 받지 못할 슬픔이 있다는 것을/ 슬픔의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본 자만이 안다/ 눈물이 말라 돌이 될 때까지 울어 본 자만이 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슬픔의 가파른 언덕길을 걷는 동안/ 기도는 하늘에 있지 않고/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라는 걸 알았다…”

표제시 ‘슬픔의 바닥’은 3년 전 대학생이던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번개 삼킨 나무”처럼 살았던 시인의 고통을 상징한다. “참척(慘慽)은, 무어라 말하기 힘든 고통이자 참 아프고 무서운 말”은 이해와 공감의 수준을 능가한다.

시인은 젊은 시절에는 해직의 아픔도 겪었다. 89년 전교조 결성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교단을 떠났다. 5년 동안 거리의 교사로 살았고, 한편으로 전교조 전남지부에서 상근자로 활동했다.

“참교육 운동을 했어요. 당시 전교조 전남지부 사무실이 대인동에 있었는데 용봉동 상하방에서 살면서 대인동까지 걸어 다녔지요. 해직기간에는 우유값을 걱정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당시는 어렵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무참하고 가혹한 시간’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문학 공부도 참 열심히 했다. 해직 이후 참교육 활동과 시작 활동을 부지런히 했고 94년 해남으로 복직한다.

이후 땅끝문학회를 결성해 고향 선배인 김남주 시인을 추모하고 선양하는 일에 매진했다. 2000년 김남주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그 후 매년 ‘김남주추모제’와 ‘김남주문학제’를 추진해오고 있다. 그에게 김남주 시인은 ‘정신적 혈육’ 같은 존재다. 그는 ‘김남주 정신’은 자신의 믿는 바를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김남주는 시와 삶이 일치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김경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슬픔에만 갇혀 있지는 않는다. ‘슬픔의 바닥’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알기에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기억시’를 쓰고 낭송회도 다니며 유족들과 함께 슬픔을 공유하기도 했다.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그는 “당장 특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여행도 많이 하고 그간 미루어 두었던 책들도 읽고 ‘명상과 영성’에 대한 공부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는 26일 오후 7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리는 제 48회 비타포엠 북 콘서트에 김경윤 시인이 초대됐다. 고영서 시인의 사회로 서애숙, 김민휴 시인의 시낭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