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장기미제사건 수사 감추기 급급한 경찰
경찰청 “건수 외엔 일체 알려주지 말라”며 이상한 지침 내려
화성사건 계기 수사 속도 필요…전문가들 “적극 알려 제보받아야”
광주·전남청 전담인력 각각 3명 뿐…자료 검토하다 허송세월
2019년 09월 20일(금) 04:50
“장기 미해결 강력사건을 단 한 건이라도 해결하겠다.” 경찰청의 결의에 찬 목소리다. 하지만 경찰청이 전국 지방경찰청에 ‘언론에 장기 미제사건은 건수 외엔 일체 알려주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 미제사건 해결률을 높이겠다는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화성 연쇄 살인사건’처럼 미제사건 해결에는 제보 한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경찰청이 직접 나서 미제 사건을 숨기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일선 경찰에선 모처럼 찾아온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활용해 제보를 접수받아도 부족할 판에 “이미 알려진 미제사건에 대한 공개를 지침까지 내려 금지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19일 경찰청과 광주·전남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날 전국 지방청에 일괄적으로 지침을 내려 언론에 장기 미제사건과 관련해 건수 외엔 함구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은 핵심 제보자의 신고로 DNA 분석을 통해 ‘화성연쇄 살인범’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장기 미제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됐지만, 경찰청은 나머지 미제사건에 대해선 침묵했다.

경찰청 미제사건 담당자는 이날 광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강력 미제사건의 경우 언론보도가 나오면 피의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미제사건 공개거부 이유를 밝혔다.

‘수십 년간 피의자를 밝혀내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에 무슨 피의자 도주 우려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이 관계자는 “수사사항에 관한 부분이니 이해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청의 이 같은 지침에 따라 각 지방경찰청에서도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질문에 “죄송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미제사건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외부로 알려 제보를 받고, DNA 검사도 해야 해결이 가능하다”면서 “이미 다 알려진 미제사건에 대해 경찰청이 갑자기 공개를 거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물론 이날 결정적 국민제보와 DNA검사를 통해 33년만에 ‘화성 연쇄 살인범’을 찾아내긴 했지만, 수사인력배치 등을 보면 나머지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수사의지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광주·전남청의 미제사건 전담 인력은 각각 3명에 불과하다. 장기 미제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 당시 수많은 수사인력에 수사본부까지 차리고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극소수의 수사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살인사건은 발생 15일이 지나면 해결이 어려운데다, 장기 미제사건의 경우엔 1건당 3명의 수사인력이 하루 12시간씩 매달려도 사건 자료 분석에만 한 달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기껏 사건분석을 했더라도, 짧게는 1년만에 인사이동 등으로 담당 경찰이 바뀌는 사례도 있어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하던 미제사건이 지방청의 전담팀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5년이나 걸리는 것도 문제다. 사건이 발생 후 5년이 경과해야만 사건기록과 증거물이 전담팀으로 넘어가는 탓에 증거 훼손 등으로 사건해결이 쉽지 않다는 게 일선 경찰들의 설명이다.

경찰의 더딘 수사방식을 바라만 봐야 하는 범죄 피해 가족들은 “전형적인 ‘수사편의주의’ 방식”이라며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한편 2000년 이후 광주·전남에서 발생한 강력 미제사건은 총 18건(광주 11건, 전남 7건)이다.

광주일보가 5년 이상 해결되지 않은 강력 미제사건을 자체 분석한 결과, 광주지역 주요 미제사건 중 하나는 김모(49)씨가 지난 2009년 3월 9일 광주시 북구 중흥동 모 교회 주차장 입구에서 둔기에 맞고 숨진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면식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찾지 못했다.

또 다른 사건은 2001년 9월 4일 서구 내방동의 한 가정집에서 임신부(35)가 10군데가 넘게 흉기에 찔린 채 태아와 함께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도 십 수년이 흘렀지만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이 외에도 동구 60대 노인 둔기 피살 사건(2008년 10월 19일), 광산구 40대 남성 둔기 피살 사건(2005년 5월 16일), 용봉동 여대생 알몸 테이프 피살 사건(2004년 9월 14일) 등이 있다.

전남의 주요 미제 사건은 목포 여대생 성폭행 살해사건(2010년 10월 15일), 나주 지석강 40대 여성 속옷 변사체 사건(2008년 9월), 화순 80대 독거노인 살해사건(2007년 1월), 순천 농수로 60대 둔기 피살 사건(2005년 5월), 영암 부인 흉기 살해사건(2004년 8월), 나주간호사 알몸 살해사건(2000년 8월) 등 7건에 이른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