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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황옥주 광주수필문학회 회장] 늙음은 죄가 아니다
2019년 08월 29일(목) 04:50
아닐 것 같은데, 서울에는 노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술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지기가 지킨단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술집인지 내 돈 주고도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곳이 있다니 기가 찰 일이다. 돈이 만 가지 재주를 부리는 세상에 돈 있으면 어디 술 마실 곳이야 없을까만 늙었다고 내놓고 차별하고 내친다니, 그런 곳 가 볼 주제도 못 되면서, 무단히 심통이 난다.

늙음은 잘못이 아니고 죄가 아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젊음을 누린 것이 아니듯 저지른 잘못이 많아 노인이 된 것이 아니다. 태어나 죽음으로 향하는 행로에서 싫어도 누구든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아직 늙음에 이르지 않은 젊은이들은 노인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잘 안다. 다 젊은 시절을 겪어 온 사람들이다. 계곡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듯 사람의 일생도 누구나 같은 과정을 이어받으며 종착점에 이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겼다는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은 같다’ 혹은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도 같은 뜻이라 생각된다. 잎 나고 꽃 피고 열매 맺고 지는 것이 나무의 일생인 것처럼, 사람도 한 번 지나온 과정은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그래서 노인은 ‘성숙’을 뜻하는 것이지 ‘낡은 것’이 아니다. ‘물건이 오래되면 귀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오래된 사람을 귀신’이라 하지는 않는다. 마당가 낡은 빗자루는 도깨비가 되지만 사람은 늙을수록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한자 중 앎을 뜻할 때는 알 ‘지’(知)자를 쓰고 지혜를 뜻할 때는 ‘지’(智)자를 쓴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서가 아니라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지혜의 ‘지’자에는 지식의 ‘지’자에 ‘일’(日)자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인간은 날(日)이 많이 지날수록 노인이 되고 노인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완성된다. 지식은 스승으로부터, 아니면 책을 통하여 금방이라도 배울 수가 있다. 그러나 지혜는 아니다. 한자를 만든 사람이 괜히 ‘지’자 밑에 ‘일’자를 더 붙여 놨겠는가? 지식 많은 젊은이는 넘쳐나도 지혜로운 젊은이는 드물다.

19세에 장원급제하고 파주 군수가 되었던 고불 맹사성은 자기 말고는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재주 자랑할 속셈으로 산속 노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많이 하라”는 가르침에 고불은 “다 아는 이런 소리나 듣자고 먼 산속까지 왔겠느냐”며 화를 내고 일어섰다. 그러자 노승은이 차나 한 잔 드시다 가라며 붙잡는다. 찻물이 넘쳐도 노승이 멈추지 않고 계속 따르자 “찻물이 넘쳐 바닥을 적십니다”하는 젊은 군수의 말에, “찻물이 넘쳐 방바닥 망치는 것을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하고 늙은 스님이 조용히 타일렀다. 너무 부끄러웠던 맹사성은 서둘러 물러나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혔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지 않습니다”

늙은 사람의 지혜는 맑은 샘물과 같다. 아무리 퍼다 써도 마르지 않아야 샘물이다. 노인은 완성이란 말과 동의어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내가 노인이 아니었을 때는 ‘별소리도 많다’ 정도로 여긴 채 밖으로 흘려버렸다. 지금은 생각해 본다. 반성도 해 본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무조건 ‘그렇고말고’ 장단을 칠 수가 없다. 숨겨진 뜻을 생각해 보면 그 속에는 섬뜩한 묵언의 경고가 숨어 있다. 그냥 노인이 아닌, 두뇌가 채워져 있는 노인만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서가가 비어 있거나 별 볼 일 없는 책들만 꽂혀 있는 도서관은 도서관이되 도서관 이라 할 수 없다. 노인의 지혜도 그렇다. 노인이 노인으로서 존경을 받으려면 마지막 날까지 멈춤 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조양숙 씨는 ‘논어강설’ 제25강에서 노자안지(老者安之)를 “젊은이는 지혜를 연마하는 시기이고, 노인은 지혜를 실천하는 시기다”라 풀이해 놓았다.

노인의 존경은 노인들이 만들어 낸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늙어 간다. 조양숙 씨의 강설처럼 생즉학(生則學)이요 학즉생(學則生), 삶이 끝나는 날까지 ‘사는 것이 배우는 것이요 배우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삶을 마무리하고자 할 때 사회는 노인을 존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