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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먼저 되라는 스승 의재 가르침 깊게 자리 잡았죠”
의재 제자 양계남·장찬홍 화백
“말씀 아닌 행동 보여주셨던 분”
1932년 작 ‘묵포도’ 첫 공개 감명
광주시립미술관 10월20일까지
‘의재 (毅齋)산이 되다’전
연진회 회원 작품·아카이브
9월21일 무등산 의재 흔적 답사
2019년 08월 22일(목) 04:50
의재 허백련
‘의재 산이 되다‘전에서 첫 공개된 허백련 작 ‘묵포도(墨葡圖)’.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의재 산이 되다’전에서 만난 장찬홍(왼쪽)·양계남 화백과 4명의 제자·의재의 합작도 ‘이양신성’.










매해 설날이면 무등산 자락 선생님 댁에 다함께 모여 떡국을 먹었다. 상을 물리고 나면 자연스레 화선지와 먹을 내왔다. 누구는 난을 치고, 누구는 국화를 그리면 멋들어진 한폭의 그림이 완성됐다. 가끔 선생은 그림에 제(題)를 썼다. 월아 양계남(74·전 조선대 교수) 화백이 기억하는, 스승 의재 허백련(1891~1977)과 연진회 회원들이 함께 한 1970년대 설날의 ‘춘설헌’ 풍경은 조금은 낭만적이다.

지난 10일 의재 제자였던 양계남 화백, 계산 장찬홍(75)화백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의재 毅齋)산이 되다-연진회로 이어진 의재 정신과 예술’(10월 20일까지)전을 관람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기획전에는 의재와 그의 맥을 이은 연진회 회원 작품 40여점을 비롯해 사진·영상·편지 등 각종 아카이브 자료들이 함께 전시됐다.

칠순이 넘은 두 화백은 스승이 떠난 지 40여년이 넘었지만 스승에게 들었던 말, 스승과 함께 했던 일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스승에게 받은 칭찬에 대해 이야기할 땐 꼭 어린아이 같았다.

“선생님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 나는 게 편안함이예요. 큰 어른이 있으면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그 안에 든든함이 있잖아요. 엄숙함과 편안함이 함께 한다고 할까요. 선생님과 있으면 세상만사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음, 음’ 이러시며 고개를 끄덕이시는데 말씀이 아닌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시는 분이셨죠.”

몇차례 퇴짜를 맞고 제자가 된 양 화백의 회고다.

두 사람은 확대돼 전시장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의재가 춘설헌을 나서 무등산 아침 산책길에 나서는 뒷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다. 자신들이 아침이면 늘 보던 장면이기도 했다.

“춘설헌의 창문이 굉장히 컸어요. 아침 해가 떠오르면 너무 환해요. 창호지에 비쳐 들어오는 햇살이 참 아름다웠죠. 선생님하고 차를 마시고 있으면 꼭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장 화백의 이야기는 전시를 기획한 황유정 큐레이터에게 영감을 줬고, 전시장엔 ‘춘설헌’ 공간이 상징적으로 재현됐다. 이 곳에는 두 화백과 최영국·남경희 화백 등 4명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의재가 제(題)를 쓴 ‘이양신성’이 걸려 있다.

전시장에서 오래된 사진과 편지 등을 보며 두 사람은 소회에 젖었다. 스승 생일날 모여 찍은 사진, ‘인문학의 요람’이었던 춘설헌을 찾았던 오지호·이은상·함석헌·정일형 등 각계 인물들과 ‘25시’ 작가 게오르규의 사진도 눈에 띈다.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려야 하지만 글씨도 잘 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학문도 상당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구요. 무엇보다 그 전에 인간,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제 맘에 넓고 깊게 자리하고 있어요. 이처럼 훌륭한 분을 스승으로 모신 걸 보면 전생에 제가 참 괜찮은 일을 했던 듯 합니다.(웃음)”

장 화백은 “그림을 보여드리면 ‘여름에 연 늘어나듯이 좋아졌구나.’ ‘선산에 봉이 날아들겄다.’ 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낙선 인사를 가면 손수 차를 내리고 격려해주셨다”며 “여러 일화를 통해, 또 곁에서 직접 지켜본 바에 따르면 제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정성과 사랑으로 대하셨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1932년 작 ‘묵포도(墨葡圖)’에 큰 감명을 받았다. 화선지 6폭을 이어붙인 대작 ‘묵포도’는 수묵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포도 고목의 깔깔한 잎사귀와 구불구불한 줄기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선생님 문하에 있을 때 대작을 그리시는 모습은 못봤는데 혈기왕성한 시절의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작품을 보니 참 좋네요. 춘설헌에 다니던 15년간 선생님의 묵화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사군자에 모란·파초·연꽃·포도 등을 합친 ‘10군자’를 정립하셨는데 담백한 먹으로 그린 작품들의 매력은 이루 말 할 수 없죠.” (양계남)

일제 강점기에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민족주의자였던 의재는 우리 시대 추구할 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주장하고 단군신전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 1947년 ‘삼애학원’(광주농업기술학교)을 설립해 30년간 농촌 지도자를 양성했다.

“내게는 날카롭고 딱딱한 골필 보다는 흠뻑한 중묵이 마음에 들거든. 이미 무등산에 사니까 필법도 무등산 같이 두리뭉실하게 달라진 것인지도 몰라.” 의재가 생전에 한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940년대 비단에 그린 ‘설경’ 작품과 ‘농경도’, ‘홍익인간’ 등 의재의 대표작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또 문장호·박행보·양계남·장찬홍·이강술·최덕인·허달재 등 연진회 회원들의 작품도 전시돼 ‘남종화의 마지막 거목’으로 불리는 의재에게서 이어진 남도 수묵화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편 광주시립미술관은 오는 9월19일 ‘춘설헌’ 등 의재의 흔적을 찾는 유적 답사를 진행한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