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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슨 동네북인가
2019년 08월 09일(금) 04:50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좀 뜨악하긴 했다.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대통령의 이 말씀,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찜찜하다. 왜 그럴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목 앞에 칼이 들어오는 이 위급한 때에 너무 한가한 말씀 아닌가.

그래도 야당은 신이 났나 보다. 제1야당 대표는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소들은 좋겠다. 웃을 일 많아서.) 같은 당의 또 다른 의원도 “대통령의 몽상가적 발언에 북한이 ‘꿈 깨시라’며 새벽에 미사일로 직접 화답했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발언이 있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북한의 김정은은 모종의 발사체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그러니 야당의 비난이 좀 지나치고 얄망궂다 해도, 달리 할 말이 없을 듯싶다.

북한이 쏘아 올린 방사포는 매우 위협적이라고 한다. 정확하고 빠르지만 최대 비행고도가 낮아 요격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사일보다 싸기 때문에 수십~수백 발을 한꺼번에 쏠 수 있단다. 한데 요격 수단은 현재 한국군은 물론 주한미군에도 없는 상태다. 이 방사포는 우리 군의 ‘전략무기’인 F-35 스텔스기가 배치된 청주 기지나,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오싹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별일 아니라는 듯 희희낙락이다. 사정거리가 자기 나라 본토에까지는 미치지 않으니 상관없다는 뜻일 게다. 그래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는 내심 한국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밝힌 것인데, 이에 대해 중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푸총 중국 외교부 군축사 사장(국장급)이 중거리 미사일 배치 예상 지역으로 한국·일본·호주를 거론하며 “(미국 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간절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는 통하고 남쪽은 철저히 배격하는’ 통미배남(通美排南) 전략으로 돌아섰다. 사드 배치 사태 때도 그랬지만 중국의 겁박도 계속될 태세다. 일본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우리의 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동맹국이라는 미국은 방위비 올릴 궁리에만 골몰한 채 싸움 말릴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



어느새 우리는 동네북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나니 조선인들 조심하자.” 8·15 광복 이후 세간에 떠돌았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미·소 두 나라는 일본을 굴복시킨 해방군이니 그렇다 치지만, 향후 일본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그 무엇에 근거했을까?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 영원히 재기 불능으로 보였던 일본 아니었나. 그럼에도 당시 우리 민중들은, 경제 대국이 되어 다시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지금의 일본을 미리 내다본 셈이니, 그 혜안에 새삼 감탄할 뿐이다.

전후 일본의 부흥은 순전히 우리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1950년대 미국은 한국에 매년 2억여 달러의 원조자금을 제공했다. 대신 ‘그 자금으로 일본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일본을 공산권 견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 아래 일본의 경제 부흥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이를 최대한 이용, 신생국가 한국을 길들이며 끊임없이 일본 의존도를 높여 갔고, 결국 한국은 일본 경제 예속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유일하게 70년 넘도록 무역 적자를 내고 있는 이유다.

한일협정 때도 미국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시에도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 역사의 고비마다 미국은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해 온,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이런 미국에 온갖 알랑방귀를 뀌며 한국을 내치려 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북한의 ‘통미배남’ 전략을 쏙 빼닮았다.

장기 집권과 개헌을 꿈꾸는 아베 총리가 그동안 예고했던 대로 엊그제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공포를 강행했다. 수출 규제를 강화한 기존 3개 품목 이외의 ‘개별 허가’ 품목을 더 지정하지는 않았다. 잠시 추가 경제 보복을 멈추고 한국 상황을 지켜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백색국가 제외에 대해 “경제 보복이나 대항 조치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여전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다.



아사히 맥주만 사지 않아도



나는 20여 일 전에 쓴 칼럼(‘일제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고’, 7월19일자 2면)을 통해 ‘국민과 정부의 분업화’를 주장한 바 있다. 정부는 냉철한 자세로 외교적 노력을 다하며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국민은 일제 불매 운동으로 일본과 맞짱을 뜸으로써 정부에 힘을 보태 주자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데 그 자발적인 국민의 불매 운동과 애국심에 편승해 자신의 이득을 보려는 이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례로 어느 자치단체장이 일제 사무용품 안 쓰겠다며 죄다 걷어서 투명한 상자에 가두는 퍼포먼스를 펼쳤다는 거다. 이에 어느 작가가 점잖게 나무란다. “저렇게 멀쩡한 물품을 단지 일제라는 이유로 다 걷으면 자원 낭비 아닌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행사에 한 번 이용하고 나서 세금으로 다시 사겠다고? 아니 눈이 있으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떤 댓글들이 오가는지 좀 보시라고요.”

“유니클로 옷 산 거 어떡하죠?” “이미 산 거 할 수 없죠. 앞으로 안 사면 됩니다.” “맞아요. 멀쩡한 옷 버릴 순 없으니까. 집에서 잘 입으세요.” “네. 어차피 장기전입니다. 불필요한 자극도 비난도 하지 맙시다,” “유니클로 망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하죠?” “집 근처에 세븐일레븐은 또 어떡하죠?” “편의점주는 소상공인이니까 먹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편의점 이용은 하되 아사히 맥주만 안 사도 충분히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 국민의 수준이 이 정도다. 누군가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아니, 참으로 어른스러운 성숙한 면모다. 다만 이에 수준이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또! 나라를 걱정하는 체하면서 늘 분열을 조장하는 일부 보수 언론은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