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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욱 서울취재본부장] 총리의 역할론
2019년 07월 31일(수) 04:50
일본의 경제 보복 정국이 이낙연 국무총리의 ‘역할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 총리는 기자 시절 일본 특파원과 국회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맡은 바 있는 대표적 ‘일본통’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권 일부에서도 대화 상대로 이 총리를 지목하기도 한다. 국회 방미단 소속으로 한미일 3국 의원회의에 참석했던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일본 의원들이 협상 파트너로 이 총리가 적격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얼마 전 한일 갈등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투톱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어 이 총리의 ‘역할론’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총리의 대일 특사 파견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우선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 배상과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에서 양국 접점을 찾기 위해 조율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어에 능통한 이 총리는 비공식적으로 일본의 관가 또는 정계·경제계 등 인적 네트워크와 수시로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조만간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접점을 찾지 않고서는 두 나라 모두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 총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면 여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로 자리를 굳히지 않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총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역할론’이 ‘대망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그동안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촌철살인의 답변으로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진압, 친문 핵심 진영의 지지를 넓혀 가는가 하면 강원도 산불 사태에서의 안정적 대응으로 중도 및 보수 진영에서도 호평을 받는 등 확장성을 키워 가고 있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일본 이슈는 감정적인 부분이 크고 그만큼 폭발성이 강한 만큼 이 총리가 한·일 갈등 문제를 잘 풀어낸다면 민심의 폭발적 지지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 총리가 내년 총선 때까지 내각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 등 국내외 경제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총리 교체에 나설 경우, 국회 동의를 둘러싸고 정쟁만 일으켜 국정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 내년 총선에서 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여의도 정치에 합류한다면, 차기 대선 경쟁이 조기 점화돼 여권 내부의 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우려 등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총리의 안정적 내각 운영 능력을 국민의 뇌리 속에 각인시키는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년 2개월째 재임하고 있는 이 총리가 내년 총선 때까지 임기를 이어 간다면 최장수 총리 기록도 갈아치우게 된다. 아직까지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김황식 전 총리가 2년 5개월로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 총리는정치적 운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반면 야권은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야 모두 강력한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 흔치 않는 상황도 겹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전반적인 정국 흐름이 이 총리에 유리하게 형성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라면 내년 총선 이후 이 총리의 대망론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낙연 대망론’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당장 친문 진영의 견제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각설은 ‘친문 후보론’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치 참여에 선을 긋자 친문 핵심에서 ‘조국 대망론’을 부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호남’이라는 지역적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과제다. 일단 ‘영남 대 호남’ 구도를 오히려 과거 프레임에 가두는 시대적 이슈 제시가 필요해 보인다. 또 문재인 대통령 후광에 힘입은 ‘2인자’라는 이미지도 약점이다. 그가 4선 국회의원과 전남도지사를 지내면서 정치적 상징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지점이다. 그동안 대권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한 국무총리들의 잔혹사를 감안한다면 이 총리가 마주할 현실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 총리가 한일 갈등 국면 타개로 대선의 길을 여는 것은 물론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이루지 못했던 호남의 여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