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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분배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19년 07월 29일(월) 04:50
어느 사회든 사람들이 공동체 관계 속에 사는 한, 분배의 문제는 중요하고 예민하며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잘못된 분배는 심각한 갈등과 파괴적 분열을 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마저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배의 의미를 전문적이고 복잡한 이론과 설명을 잠시 덮고 단순히 본질만 보면, 분배란 노력과 노동을 통해서 얻은 각자의 몫을 다른 사람이 빼앗지 않고 노력한 당사자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분배 문제는 늘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가? 그 이유는 분배의 기본이 무시된 채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욕망하고 이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각자의 몫’의 의미가 보는 눈과 힘이나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왜곡된다. 나의 몫과 타인의 몫을 재는 저울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파행적 분배와 권력의 관계 그리고 원칙과 공정성이 무너진 불행한 분배의 문제가 고전 ‘일리아스’를 읽는 하나의 갈래다.

서양문화의 원형이라는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왕비인 헬레나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빼앗기자 영웅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그리스 동맹군이 트로이를 공격한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 군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지부진한 전쟁을 된다.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 연합군의 영웅들 사이에서 생긴 갈등 때문이었다. 당시의 전쟁은 적국을 지배하는 목적 이외에도 많은 물자와 노예들을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전리품의 분배는 전쟁의 승리를 좌우할 만큼 결정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최고의 권력자인 아가멤논은 아무도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전리품을 챙긴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취해서 분배의 원칙보다 우선하는 금기의 경계를 넘는다. 아폴론의 신전을 지키는 사제 딸을 자신의 전리품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권력자의 행동은 그리스 진영 내에 심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신들마저 화를 내게 하면서 전염병이 돌게 된다. 그러자 트로이 전쟁의 최고 영웅인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거세게 비판하고, 아가멤논은 사제의 딸을 돌려보내는 대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빼앗는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트로이군과의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 당연하게 그리스군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신들의 뜻으로 아킬레우스의 참전이 없이는 트로이 전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아킬레우스가 자주 사용하는 ‘명예의 선물’이라는 표현이다. 그는 자신의 전리품이 단순한 포상이 아니고 자신의 명예를 보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전리품을 통치권자가 권력을 통해서 빼앗아 가는 것은 아킬레우스가 지켜온 삶의 가치이자 목적인 명예를 짓밟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동지를 모멸과 모욕으로써 공개적인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다. 이제 아킬레우스에게 남은 것은 영웅의 명예 대신 견딜 수 없는 치욕감과 수치심뿐이다. 그 감정을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토로한다. “이토록 무서운 슬픔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어떤 자가 나보다 더 권세가 있다고 해서 자기와 동등한 나를 약탈”하기 때문이며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비겁한 자나 용감한 자나 똑같은 명예를 누리고” 사는 것은 불명예의 수치이며, 부당한 분배는 정의의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라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를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분배로 인해서 스스로의 삶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강요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아킬레우스가 목숨을 잃을 운명에도 전쟁에 나간 이유는 공동체적 삶과 미래에 대한 책무와 명예로운 삶을 위한 것이었기에, 이를 부정하는 권력에 대한 그의 분노는 슬픔마저 담고 있다.

노력과 노동이 무의미하고, 필요보다는 욕망을 위한 분배가 일으키는 슬픔과 분노가 고전 속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사는 현실 곳곳에서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