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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유산 대흥사 <13> 일지암
초의선사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 이어온 차의 성지
풀·가지로 이은 초막…무소유·청빈함 표상
초의선사 41세 중건…다도 정립·학문 정진
‘다신전’·‘동다송’에 차에 대한 모든 것 수록
81세 입적…다(茶)·선(禪)·시(詩) 남겨
2019년 07월 17일(수) 04:50




일지암 현판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연기 같네

이곳에 와서 머문 지도 어느덧 반년이구나

명월을 벗삼아 몇 번이나 달 아래 누웠던가

맑은 강줄기 바라보며 갈매기와 잠이 드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은 머물 자리가 없으므로

좋은 소리 싫은 소리 어찌 귓가에 맴돌겠는가

소매 안섶에는 여전히 뇌소차 남아 있으니

구름에 기대어 두릉의 샘물로 차를 끓이네

(초의선사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石泉煎茶)



그 암자는 그곳에 있었다. 초막을 감싼 산허리가 부드럽다. 두륜산 두륜봉 일대에 꼬막처럼 들어앉은 작은 초가. 늙은 새처럼 외로운 암자는, 그러나 자유롭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내리는 대로, 세상의 시간은 흘러간다. 깊은 적묵.

일지암(一枝庵)에서 산 너머 너머를 바라본다. 해의 잔광이 산등성이를 비추며 사라진다. 불현듯 초막 한칸 지어두고 한 시절 이렇게 보내고 싶다. 아서라 그대는 사바의 사람 아니던가. 세파에 흔들리는 책상물림, 부끄럽고 부끄럽도다.

초의선사의 뜻을 알현하려 나선 길, 그저 녹음이 주는 향기만으로도 족할 터. 소의 잔등 같은 산줄기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저 유순한 산등성이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으면. 세상의 시시비비에 걸림이 없는 바람처럼 떠돌았으면….

대흥사 일지암(一枝庵), 그 뜻이 다함없이 좋다. ‘일지’는 ‘한산시집’에 나오는 시구라고 한다. ‘새가 앉기에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듯 납자 또한 그러하다’는 의미다. 무소유사상이며 일지(一枝)의 정신이다. 푸른 옷 ‘초의’(草衣)와도 상통된다.

일지암은 작은 풀, 가지로 이은 초막을 일컫는다. 한 칸의 초가가 대궐 부럽지 않다. 청빈함의 표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심중에는 십지(十枝), 백지(百枝)가 드리워져 있다. 버리고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다. ‘희로애락애욕정’은 쉬이 버려지지 않는다. 청산은 말없이 살라지만, 인산(人山)은 끝없이 소유하라 부채질 한다. 그러니 어찌하랴. 마음 공부를 위해 이렇듯 일지암을 찾을 수밖에. 세상의 벗들아, 가끔은 이곳에 와서 다친 마음도 추스르고 맑은 바람도 한 사발 하거라. 아니 은은한 차 한잔 마시며 속세의 삿된 생각도 내려놓거라. 애면글면 돈벌이에만 여투지 말고….

줄곧 초의선사의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라는 시가 떠나지 않는다. 선사의 차와 시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초의는 말했다.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천품에 삿됨이 없다”고. 문장가 최치원은 “차를 얻었으므로 근심을 덜었노라”고 했다. 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서 덕스러운 풍모가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인 모양이다.

“옥화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 바람 일어/ 몸 가벼워 걸음걸음 옮기는 최상의 맑은 경치여/ 밝은 달은 촛불되어 또 나의 벗이 되고/ 흰 구름은 자리 펴니 한 폭의 병풍이 아닐런지”

초의선사의 ‘맑은 차 한잔’을 읊조리며 일지암을 두리번거린다. 오두막은 깊고 고요하다. 내 마음 속에도 은밀한 초막 한칸 내어주고 싶다. 세상 무참하여 뼛속처럼 아프고 쓸쓸할 때 그 오두막에 침잠하리라.

이곳은 초의선사가 41세에 중건했다. 그는 이곳에서 다도를 정립했으며 불교와 도교, 유학 등 다른 학문에도 정진했다. 시서화에도 특출했으며 탱화도 잘 그려, 대흥사에는 그의 작품이 남아 있다.

“초의선사는 산 속에 기거하면서도 유명한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넓은 교류를 했습니다. 또한 내외전(內外典)에 통달하고 시와 문장에 능했죠. 예술뿐 만 아니라 인품도 중후(重厚)하고 인자(仁慈)하였지요.”

박충배 대흥사 성보박물관장은 “초의선사는 맑고 깨끗한 수도인(修道人)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초의집’(草衣集)에 나타나는 인사만도 무려 40여명에 넘는다고 한다.

그는 산속에 살면서도 고립은 멀리했다. 산야에 묻혀 있었지만 늘 세상과 가까이했다. 닫혀 있으되 열려 있고, 열려 있으되 닫혀 있는 그의 담박한 성정이 부럽다. 아마도 그는 ‘부드러운 직선’ 같은 삶을 지향했을 것이다.

초의선사와 가장 가까웠던 이는 다산(茶山) 정약용이었다. 초의는 다산에게서 유학과 시학의 영향을 받았고, 다산은 초의를 통해 다도의 깊은 세계를 음미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아름다운 지음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사상적인 면에서나 기호적인 면에서나 많은 공통점이 있었지요. 그러나 이면에는 은은한 차의 향기가 스며 있었습니다. 친교 또한 다도를 연하여 이루어졌죠.”

대흥사 월우 스님의 설명이다. 월우 스님은 “특히 초의선사의 다도는 ‘동다송’(東茶頌)에 잘 드러나 있다”며 “한마디로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을 추구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초의가 저술한 ‘다신전’은 차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차 제조법, 보관법, 마시는 법, 물 끓이는 법 등 모두 22개 항목이 수록돼 있다. 한국의 다경(茶經)으로 불리는 ‘동다송’은 차의 역사, 차 나무의 품종, 차의 품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 ‘일지암시고’, ‘일지암문집’, ‘초의시고’ 등도 역사적으로나 문헌적으로나 가치가 높다.

만년의 초의는 거의 산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 일지암에 기거하며 시를 짓거나 차를 마시며 선정(禪定)에 들곤 했다. 그리고 법랍 65세, 세납 81세 홀연히 입적한다. 대흥사 13대 종사이기도 했던 그의 마지막은 차향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다(茶)와 선(禪)과 시(詩)가 남았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