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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12>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
눈물 없인 볼수 없는… 오래도록 못 잊을…
1968년 첫 개봉 6편 시리즈로 이어져
서울 관객 37만명 지금 천만관객과 같아
최고 흥행 감독 정소영 시나리오 작가 김수현
배우 문희 존재감 감탄 연기 천재 김정훈 호흡
2019년 06월 26일(수) 04:50






























한국영화는 1960년대 내내 전성기를 구가했다. 매년 100편 이상 만들어졌고, 1968년에는 제작 편수가 212편, 1969년에는 229편이 제작되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1970년 231편으로 최대 제작 편수를 기록한 이후 관객 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1971년 202편에 이어 1972년에는 122편으로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다가 70년대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는 TV시대 개막으로 영화 관객이 줄어든 이유와 정부의 통제 및 검열 강화로 산업 또한 위축된 것이 주요 이유였다.

이렇듯, 1960년대 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1970년대 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던 한국영화와 궤를 같이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다. 1968년 여름에 개봉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서울 관객 37만 명을 동원하며 이전에 ‘성춘향’(1961)이 가지고 있던 36만 명의 흥행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이 숫자는 지금으로 따지면 천만관객을 넘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요즘으로 따지면 ‘극한직업’과 같은 반향을 일으킨 영화였다.

유치원 교사인 혜영(문희)은 이웃에서 하숙을 하는 남자 신호(신영균)를 사랑한다. 혜영은 신호를 위해 헌신하고 신호의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신호의 본부인(전계현)이 시골에서 두 아이와 함께 상경을 하게 되고, 혜영은 절망감에 빠진다. 그렇게 혜영은 동해안의 바닷가마을에서 영신(김정훈)을 낳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여덟 살이 된 영신은 아빠를 찾게 되고, 이에 혜영은 눈물을 머금고 영신을 아빠에게 되돌려 주려한다. 하지만 영신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고 혜영은 다시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마을로 돌아간다. 이렇듯, 여인의 희생과 모성애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1960년대 최고의 흥행영화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가 흥행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속편을 예고하면서 마무리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제작단계부터 미리 다음 편을 계획하고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듬해 ‘속 미워도 다시 한 번’(1969)이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영신을 데리고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던 혜영은 신호가 오빠 편으로 전해 준 돈으로 서울에서 화원을 경영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아들 영신이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고 가며 눈물 흘리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속편 역시 2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편의 흥행세를 이어갔고, 이듬해 ‘미워도 다시 한 번3’(1970)이 개봉하게 된다. 3편은 일본에 살고 있는 엄마를 잊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영신이 불량배들에게 잡혀 껌팔이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듣고 귀국한 혜영의 극진한 간호로 영신이 깨어나게 되고, 다시 한 번 영신을 둘러 싼 갈등이 펼쳐진다. 3편 역시 관객 동원에 성공했고, ‘미워도 다시 한 번 대 완결편’(1971)이 만들어지며 이 시리즈는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렇게 ‘미워도 다시 한 번’이 4년을 연속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에는 당시 여성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그토록 여성관객들을 극장으로 몰려들게 했는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부터 밥술이나 뜨는 집안의 남자들은 첩을 두기 일쑤였고,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에도 법적으로 금지되기는 했지만 남자들은 본부인 말고도 첩을 두어 남편과 처첩 사이의 갈등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이기적인 남자들의 사랑 놀음 때문에 고통 받는 여인들의 삶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여성 관객들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했다. 당시 여성들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일부일처제를 응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디게 바뀌는 것인지, ‘미워도 다시 한 번’ 열풍은 10년 후에 다시 불게 된다. 변장호 감독은 ‘미워도 다시 한 번 80’을 만들었고, 관객들은 다시 한 번 극장을 방문해 별로 변하지 않은 세상을 한탄했다.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 80 제2부’에 이어 2002년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 2002’가 다시 만들어졌으니, 이 시리즈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관객들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인들은 정소영 감독과 시나리오작가 김수현 그리고 배우 문희와 김정훈이다. KBS 드라마를 연출하다가 돌연 영화계에 뛰어든 정소영 감독은 ‘내 몫까지 살아주’(1967)를 내놓아 흥행에 성공했고, 이어 발표한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의 폭발적인 관객 동원으로 당대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저 눈밭에 사슴이’(1969)로 감독과 시나리오작가로 만난 정소영과 김수현은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70년대 내내 함께 했다. ‘속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포함한 3편과 4편을 함께 했고, ‘잊혀진 여인’(1970), ‘아빠와 함께 춤을’(1970), ‘필녀’(1970), ‘나는 고백한다’(1976), ‘마지막 겨울’(1978), ‘내가 버린 여자’(1978), ‘내가 버린 남자’(1979), ‘너는 내 운명’(1979), ‘겨울로 가는 마차’(1982)등 두 콤비는 수많은 화제작과 흥행작들을 내놓으면서 당대의 영화팬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김수현은 TV드라마작가로 맹활약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드라마작가로 각인되었다.

남정임, 윤정희와 함께 1세대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문희 역시 ‘미워도 다시 한 번’이 탄생시킨 스타였다. 이만희 감독의 ‘흑맥’(1965)에서 불량 청년 신성일을 교화시키는 소녀 역을 맡은 문희는 청순한 이미지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스타덤에 올랐고,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에서도 문희의 청순가련한 이미지는 빛을 발했다.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는 문희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빛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랑했던 남자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여인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문희가 가지고 있는 청순가련한 이미지는 적격이었다. 그렇게 문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 관객들도 따라 울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아들 영신을 연기했던 김정훈의 존재감도 빛났다. 아역 배우 김정훈의 눈물을 자아내는 연기는 연기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김정훈은 70년대 중후반 ‘진짜 진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하이틴 영화의 유행을 이끌게 된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