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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다산연구소장] 화산에 올라 강호를 비웃다
2019년 06월 11일(화) 04:50
“중국을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시안(西安)을 다녀오지 않으니 중국을 다녀왔단 말을 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이탈리아 로마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서둘러 송재소 교수의 중국 인문기행에 합류한 분의 말이었다. 시안과 그 일대는 중국 고대의 오랜 중심 무대였다. 나야말로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독서에 매진하고자 일에서 물러난 상황인데도 시간과 경비를 내어 참석했다.

‘산시성’(陝西省)의 성도(省都)인 시안은 중국의 ‘고도’(古都)였다.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은 첫 통일 제국인 진(秦)의 위용을 드러냈다. 한(漢)과 당(唐)의 도읍지로서, 우리에겐 ‘장안’(長安)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부근에 한 무제의 무릉, 당 태종의 소릉,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건릉이 있었다. 대명궁과 장안성 등은 당나라의 전성기를 보여 주었다. 대안탑 등 불교 관련 유적과 서역의 흔적들이 개방적인 국제도시였음을 보여 주었다.

‘관중’(關中)이라고 불린 시안 일대는 황하의 지류 등 여러 강이 종횡으로 흐르고 있어 비옥한 곳이었다. 남쪽에는 친링(秦嶺)산맥이 동서로 병풍처럼 가로질러 있었다. 이 지역은 중국 고대의 역사에서 이른바 ‘중원’이라 할 수 있다. 항우가 이곳 관중을 소홀히 한 점이 건달 유방에게 패배한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중원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가? 중원은 지리적으로 중앙의 위치일 뿐이다. 중원의 주인 자리는 늘 변방의 새로운 도전자에게 넘어갔다. 주(周)나라도 앞선 상(商, 殷)나라의 서쪽 변방에 있던 나라였다. 진나라도 서쪽 변방의 나라였다. 항우와 유방도 남방의 변두리 사람이었다. 당나라의 건국 세력도 북방 유목민족 출신이었다.

더욱이 활동 무대가 확장되면서 중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 중심이었던 이 도시가 서쪽을 가리키는 서안이나 서경으로 이름이 바뀌었듯 중심은 옮겨 갔다. 지구촌이 하나가 된 오늘날에는 더더욱 중심이란 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치산현에는 주나라 주공의 사당이 있었다. 입구에는 ‘몽견주공’(夢見周公, 꿈에 주공을 보다)이라 새긴 비석이 있었다. 공자가 꿈에 주공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탄했던 사실에서 딴 문구이다. 그만큼 공자는 주나라의 주공을 존숭(尊崇)했다. 주공은 왕위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아버지 문왕과 형 무왕, 그리고 조카 성왕을 도와 공(功)을 이루고 치(治)를 이룬 인물이었다. 주나라를 연원으로 한 ‘중화’(中華) 내지 ‘화이’(華夷)의 관념은 확장되고 변주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주공과 공자를 존숭하며 화이의 관념에 젖어들었다. 선진 문명을 동경하고 배우는 것은 문화적 안목과 역량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좋은 생각도 경직된 이념이 되면 폐해를 낳는다. 수입된 화이론의 폐해는 더욱 심했다. 문명과 오랑캐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한쪽은 무조건 높이고, 다른 한쪽은 근거 없이 무시한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정신 승리에 자족하며, 내부의 다른 생각을 억압했다. 이런 폐해가 비단 조선시대에만 한정된 것이겠는가.

여행 초기에 날씨가 불순했지만, 화산(華山)에 오를 때는 아주 쾌청했다. 화산은 약 2200m 높이로, 중국의 유명한 오악(五岳) 중 하나이다. 북쪽으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각도가 아주 가팔랐다. 깎아지른 바위로 이뤄진 화산은 무협지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북봉엔 홍콩 무협소설의 대가인 진융(金庸)이 ‘화산논검’(華山論劍)이라 쓴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작년에 작고한 진융에겐 애독자가 많다. 이념보다 실용을 택한 덩사오핑도 애독자였다. 무협지에 문외한이지만 비석 옆에 서니, 진융의 ‘소오강호’(笑傲江湖)에 나오는 악불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산파의 장문인 악불군은 별호가 군자검이다. 그러나 그는 위군자였다. 그가 절대 무공과 권력을 쫓다 가족도 제자도 배신하고 만다는 설정은 충격적이었다. 반면 그의 수제자 영호충은 정파와 사파를 넘나들며 사랑과 우정을 맺은 자였다. 기존의 문법인 정파 대 사파라는 선악 이분법을 벗어났는데, 이것이 오히려 더 사실적인 것 아닌가. 그러나 영호충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등장인물처럼 강호의 인연에 얽매여 산다. 그래서 강호의 복잡한 일을 일소에 부치는 주인공이 더더욱 매력적일지 모른다.

중원 제국의 영고성쇠를 돌아보는 기회였다. 마침 미·중 대결이 조성되는 작금이다.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내부적으로 건강하고 외부적으로 관용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나라가 패권을 얻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시 복기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앞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좀 더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