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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봉준호의 ‘기생충’ 탐구 여정
2019년 05월 28일(화) 00:00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2019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류의 세계화를 환호하는 온갖 미디어의 찬사가 밀물처럼 밀려드는 중이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라는(인디 와이어·Indie Wire) 대목처럼 그의 전작들이 하나의 회로를 타고 오버랩 된다. 소수 지배층과 다수 피지배층 간의 위계질서가 저지르는 만행을 블랙 유머로 그려 낸 그의 세상 관찰담이 ‘봉준호표 장르’로 본격적인 파장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세계 항해에 들어선 봉준호 선박은 한국 사회의 부당한 현실을 풍자하며 공명을 일으킨 힘으로 큰 바다로의 탈주 여정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일관된 부조리한 세상 탐구 여정의 출항은 ‘지리멸렬’부터 되새겨 보면 더욱 흥미롭다. 마침 필자가 진행 중인 ‘시나리오 실습’ 수업에서 이 작품을 교재 삼아 영화와 현실 관계를 학생들과 함께 분석하며 나눈 공감대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노라면 이전과 달리 특별한 요소들을 보다 새롭게 발견할 때가 있다. 그간 흘러온 세월 속에서 목격한 부조리한 사건들, 그에 따른 고뇌들이 영화 이미지에 더 강렬하게 투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시 보면 더 잘 보이는 고전이나 걸작의 힘이자 매혹이다.

아카데미 졸업작으로 봉준호가 연출한 ‘지리멸렬’(1994)은 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단편영화이다. 이후 그가 연출한 ‘플란더스의 개’ 이후 ‘살인의 추억’과 ‘괴물’‘마더’, 그리고 세계 항해에 들어선 ‘설국열차’와 개봉 예정작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식 세상 탐구 여정은 ‘지리멸렬’에서 이미 명시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기관·인물 등은 모두 주제적·시사적 의미가 없다는 자막 설명으로 열린 영화의 검은 화면에선 건강체조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옆구리 돌리고… 하나, 둘, 셋, 넷…”하는 그 음악은 낯익지만 반복하고 싶지 않은 국민 동원성 구호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1=바퀴벌레’에서는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남의 출근길을 보여 준다. 젊은 여성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셔츠 어깨 부분을 내리고픈 그의 욕망을 판타지 이미지로 보여 주기도 한다. 이어 연구실에서 그는 여성 나체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전시하는 포르노 잡지 감상에 몰두하다 강의 시간인 걸 발견하고 급히 강의실로 이동한다. 그는 현대 사회 심리론으로 아도르노의 권위주의적 성격 실험을 강의하다가 수강생들에게 나눠 줄 복사본을 챙겨 오지 못한 실수를 발견한다. 그는 과 대표 김 양에게 복사본을 가져와 달라는 부탁을 한 뒤 또 다른 더 큰 실수를 기억해 낸다. 책상 위에 그의 취미 생활인 포르노 잡지를 두고 온 것이다. 그는 5분간 휴식하자며 급히 연구실로 뛰어간다.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를 탄 김 양보다 먼저 도착한 그는 그녀가 보기 전 책상에 책을 던져 포르노 잡지 감추기에 성공한다. 그는 “바퀴벌레가 있어서…” 라는 핑계로 자신의 과오를 감춘다.

‘에피소드 2=골목 밖으로’에선 조깅 중인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다 잠시 커다란 집 앞에 멈춰서 인적을 살핀 후 그 집 계단에 앉아 거기 놓인 우유팩을 마신다. 마침 그 집에 신문을 배달하던 소년을 마주치자 그에게 또 다른 우유팩을 권한다. 고달픈 알바 소년에게 친절을 베푸는 배려라도 한 듯이 “어이 시원하다!”하며 그는 다시 뛰어간다. 신문 배달 소년이 우유를 마시는 바로 그 순간 집에서 나온 아줌마는 그를 매일 사라진 우유팩 도둑으로 몰아 손찌검까지 하며 호되게 꾸짖는다.

‘에피소드 3=고통의 밤’에선 술 접대를 받은 취객 남성의 혼란스러운 귀갓길 여정이 재현된다. 너무 늦은 데다 만취한 탓에 귀갓길이 지연된 그는 어느 아파트촌 잔디밭 구석에서 용변을 보려다 경비원에게 들켜 교훈을 듣는다. 경비원은 화장실이 없는 작업 환경에서 비상책으로 그들만의 지하실 해결책을 알려주지만, 그는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모욕에 분노하며 비열한 해결책을 실행한다.

‘에필로그’에서는 범죄 사회 문제를 다룬 긴급 TV토론으로 세 개의 에피소드 주인공들을 한자리에 모아 재현해 낸다. 바퀴벌레 핑계를 대던 교수는 사회심리학을 대변하는 지식인, 그리고 남의 집 우유를 훔쳐 먹으며 엉뚱한 소년을 범죄자로 둔갑시킨 조깅남은 유력 일간지 논설위원, 이어 접대 관습에 젖어 자신의 용변도 비도덕적으로 처리하는 비열남은 법적 질서를 대변하는 부장검사이다.

사회 권력층의 위선적 괴물 행태가 폭로되면서 나오는 뻔한 교훈적 조언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TV의 스위치를 끄는 신문 배달 청년, 그리고 양치질을 하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교수님 목소리가 반가워 열심히 TV를 보는 김 양, 밤거리에서 대형 화면으로 중계되는 TV 토론 장면은 지리멸렬이란 제목을 증명해 준다. 1994년 봉준호가 영화로 풍자했던 지배 계층의 헬조선풍 관습은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2019년 성범죄 관습의 현실적 카르텔을 암시한 것처럼 보인다.

▲팁 하나: 봉준호는 ‘지리멸렬’ ‘에피소드 2’ 에 등장하는 신문 배달 청년의 형 역할로 ‘에필로그’ 부분에 잠시 등장한다. 마치 히치콕이 카메오 출연으로 자신의 영화에 등장했듯이.

봉준호표 영화 세상에서 바퀴벌레를 포함한 기생충은 핵심 기호로 보인다. 6년 전 다산포럼에 기고한 ‘설국열차 타고 써늘하게 인류를 돌아보기’(광주일보 2013년 8월 6일 자 19면)에서 바로 그 부분에 주목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