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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019년 05월 07일(화) 00:00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春來不似春)” 이 시구(詩句)는 중국 한(漢)나라 때 북쪽의 흉노 추장에게 정략적으로 시집보내진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처지를 읊은 것이다. 왕소군이 끌려간 추운 오랑캐 땅에는 봄이 와도 풀 한 포기 돋지 않는다. 그러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은 사람은 왕소군뿐만 아니었다. 757년에 두보(杜甫)는 장안의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라가 부서져도 산과 내는 남아 있어(國破山河在)/ 장안성에 봄이 드니 초목이 무성한데(城春草木深)/ 시국을 생

각하니 꽃을 봐도 눈물이 나고(感時花

淚)/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라는 가슴(恨別鳥驚心)”

안록산(安祿山)의 반란군에 점령당한 장안성에도 어김없이 봄이 와서 초목이 무성하다. 그러나 반란군에 붙잡혀 유폐 생활을 하고 있던 두보는 나라 걱정, 가족 걱정에 “꽃을 봐도 눈물이 나고 새소리에도 가슴이 놀란다”고 했다. 안록산이 두보로부터 봄을 빼앗아 갔으니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겪은 지난봄들도 ‘봄 같지 않은 봄’이 많았다. 시인 이상화(李相和, 1901~1943)가 1926년에 느낀 봄은 어떠했던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 자문(自問)해 보지만 자연의 봄은 분명히 와 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봄 경치에 이끌려 ‘봄 신명에 잡’힌 듯 ‘발목이 시도록’ ‘꿈속을 가듯’ 봄 들판을 걷는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걷는 걸음이다. 이상화의 봄은 ‘웃음’과 ‘설움’이 뒤섞인 봄이다. 이 시는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끝난다. 그러니 당시 이상화의 봄도 ‘춘래불사춘’이었을 것이다. 일제(日帝)가 이상화로부터 봄을 빼앗아 갔던 것인데, 그는 끝내 진정한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해방이 되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

1980년의 봄은 또 어떠했는가. 80년 ‘서울의 봄’은 계절의 순환에 따른 자연의 봄과 함께 찾아온 마음의 봄이었다. 기나긴 유신 독재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얼어붙은 겨울 공화국의 차디찬 얼음을 녹이는 봄이어서, 모두들 화창한 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서울의 봄’은 너무나 짧게 끝났다. 전두환이 우리에게서 봄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춘래불사춘’을 되새겼다.

전두환은 1997년에 내란 및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추징금 2205억 원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추징금 중 1030억 원만 강제집행 되고 나머지는 ‘전 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며 내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전두환 회고록’을 집필하여 뻔뻔하게도 자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제물이었다”고 주장했고 그의 부인 이순자 씨는 한술 더 떠서 ‘내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소도 웃을 발언을 했다.

2019년 서울의 봄은 어떤가? 올해도 어김없이 개나리와 철쭉과 목련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봄에 피는 꽃들이 너무도 아름답기에 이를 시샘하는 추위가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봄은 여전히 찬란하다. 그러나 서울엔 초목이 무성하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도 봄 같지가 않다. 이 찬란한 계절에 찾아온 불청객 미세먼지 때문이다.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하늘을 뒤덮은 뿌연 미세먼지가 우리에게서 봄을 빼앗아 가고 있다.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꽃들도 혼탁한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정말 ‘춘래불사춘’이다. 봄을 봄답게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