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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한국의 냉면과 일본의 소바
2019년 05월 02일(목) 00:00
“내가 아는 한 어떤 음식도 냉면처럼 열렬한 신도를 거느리고 있지 못하다. 비빔밥, 육개장, 찰떡 뒤에 ‘광’자를 붙였다 떼어 보면 냉면의 위대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음식 이름 뒤에 ‘광’을 붙일 만한 것은 그 음식이 그만큼 중독성이 있어서일 것이다. 도대체 냉면에 무슨 맛이 있기에 사람을 중독시키는가”

소설가 성석제의 수필집 ‘소풍’에 실린 ‘냉면광’의 한 대목이다. 작가의 지적대로 다른 음식과 달리 냉면은 유난히 중독성이 강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냉면광’이 늘어나니 언제부턴가는‘면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냉면과 ‘익스플레인’(explain·설명하다)의 합성어로, 냉면은 반드시 어떻게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언행을 의미한다. 냉면광이 개인의 유별난 기호를 인정하는 의미라면, 면스플레인에는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아는 체하고 원칙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냉소가 담겨 있다.

그 냉소는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현상에 대한 저항감일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인에게 있어 소비자 스스로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계보를 분류하고, 논쟁의 선봉에 섰던 음식은 냉면이 처음이다. 나는 가난과 곤궁함의 상징이었던 메밀을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여기고 있다. 단지 소비하는 것을 넘어 문화의 관점에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을 처음 가져 보기에 어색할 따름이다.

같은 메밀로 만들지만 한국의 냉면과 같은 위상을 가진 음식으로 일본의 소바가 있다. 메밀을 제분하고 제면하는 기술이 발달하는 동안 소바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결합한다. 사실 소바는 메밀을 갈고, 반죽하고, 칼로 썰고, 뜨거운 물에 삶는 아주 간단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일본인은 이런 단순한 과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고도의 숙련이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사물의 본질을 헤아리거나 철학적인 물음의 답을 찾는 대신, 당장 눈에 보이는 본능의 세계에 충실했다. 이러다 보니 도덕적이고 윤리적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대신 그들은 ‘고도의 숙련’을 도덕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숙련이 곧 도덕이다 보니 장인이 대접받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그래서 단순 반복 작업에 집요하게 매달릴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를 매우 호들갑스럽게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일본 음식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히는 섬세함과 디테일은 이런 역사적 혹은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100m 달리기 세계기록을 보자. 1999년 모리스 그린이 세운 9초79를 우사인 볼트가 9초69로 앞당기는 데 무려 9년이 걸렸다. 고작 0.1초를 위해 수없는 반복 훈련과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과학이 총결집했다. 한계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뛰어넘기 위해서다.

소바 같은 단순한 음식에 유난히 장인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100m 달리기에서 0.1초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고도로 숙련된 장인의 손길에서 뽑아져 나오는 면의 미묘한 풍미와 식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우동과 라멘은 완전한 대중음식이 된 반면, 소바는 아직도 전통 음식 혹은 장인의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해서 한국인에게 소바는 여간 어려운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마니아도 많다. 마치 우리나라에 ‘냉면광’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의 소바가 만드는 사람 즉 장인의 솜씨에 의해 고도화되었다면, 냉면의 경우 대중의 관심이 오히려 수준을 고도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모름지기 음식은 대중의 수준만큼 발달한다. 우리는 냉면에 대해 좀 더 치열해지고 애정을 쏟아도 된다. 냉면은 그런 대중의 관심 속에서 더욱 한국적인 음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음식을 갖고 왜들 그렇게 호들갑이냐, 눈살 찌푸리지 마시라. 대중음식은 원래 야단법석 속에서 발달한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정치와 이념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냉면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