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영암 신북성당 주임신부] 고착과의 싸움, 이 험난한 여정은 언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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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이 양편으로 토라져서 이제 서로 얼굴도 보지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자, 한 아이가 화해를 하려는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한쪽 편에서 큰 소리로 “싫어!”하면서 다른 편 아이들에게 삿대질까지 한다. 도대체 왜 잘 뛰놀았던 아이들이 이 지경까지 됐을까 하는 생각으로 ‘뭐 얘들이니까 금방 화해하겠지’ 스스로 위안해본다. 그러나 좀체 아이들은 더 큰 소리가 오갈뿐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화해를 이끌어내려던 아이는 이제 지쳐 그냥 가운데 서 있을 뿐이다.
사제관으로 돌아와 TV 뉴스를 보았다. 여당과 야당이 옥신각신하며 양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광경이 펼쳐진다. 한참 고성이 오가고 말도 안되는 논지를 펴기도 한다. 이들의 정쟁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 법무부 차관인 김학의 사건의 재수사와 고(故) 장자연 씨 사건 등에 대해 “검경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야당은 ‘황운하·드루킹 재특검’으로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이게 무슨 논리인가? 우리나라를 운항해야 할 이들이 토라져버린 아이들처럼 좌충우돌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내로남불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면서 전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는 주장을 큰 소리로 지를 뿐이다. 이 싸움은 언제 끝날까?
최근 인터넷 강의를 통해 정신 역동 이론을 듣는데, ‘자아의 방어 기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물세 가지의 방어 기제 중 합리화와 고착이라는 방어 기제에 관심이 갔다. 우리의 정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합리화는 성취되지 않은 욕망이나 불합리한 태도와 생각에 대해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현재 상태를 정당화하는 방어 기제다. 이 합리화는 거짓말과는 다르다. 합리화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방어 기제이므로 자신의 변명(합리화)이 허구라는 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거짓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거짓말)이 허구라는 것을 의식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고착이라는 방어 기제는 더 심각하다. 고착은 특정 발달 시기에 고정되어 연령에 따른 정상적인 발달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는 방어 기제이다. 그 예로 신체 발달과 인지 발달은 제 나이대로 성숙했지만, 어린 아기 말투를 쓰거나 어리광을 부리는, 그러니까 떼를 쓰는 경우다. 나는 우리 정치인들이 지성인이고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자주 이 생각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변화되고 있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향하고 있기에, 이제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꿍꿍이 수작은 용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시민의식은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이들이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를 고착된 사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고착된 이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 사회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촛불 혁명 이후에 가장 느리게 변하고 있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 ‘삼겹살 불판론’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했고 제도권의 권위주위와 엘리트주의를 깨는데 앞장섰던 고(故) 노회찬 의원이 그립다. 바꾸지 못하고 있으니 고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의 시대가 싫은 것이다. 지금의 변화보다 예전에 자신들만 누렸던 기득권과 편안하고 풍요로운 물질주의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놈의 고착에 갇혀 있을 셈인가?
지금 가톨릭교회는 40일 동안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행하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시기이다. 회개는 ‘길을 바꾸다.’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신앙인들이 고착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 좀 진실해지자. 좀 더 성숙해지자. 언제까지 어린 아이들이 토라져서 싸우는 것처럼 등지고 살려는가? 좀 솔직해지자. 그래서 우리의 고착을 끝내 보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 법무부 차관인 김학의 사건의 재수사와 고(故) 장자연 씨 사건 등에 대해 “검경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야당은 ‘황운하·드루킹 재특검’으로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이게 무슨 논리인가? 우리나라를 운항해야 할 이들이 토라져버린 아이들처럼 좌충우돌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내로남불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면서 전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는 주장을 큰 소리로 지를 뿐이다. 이 싸움은 언제 끝날까?
우리 사회는 변화되고 있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향하고 있기에, 이제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꿍꿍이 수작은 용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시민의식은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이들이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를 고착된 사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고착된 이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 사회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촛불 혁명 이후에 가장 느리게 변하고 있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 ‘삼겹살 불판론’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했고 제도권의 권위주위와 엘리트주의를 깨는데 앞장섰던 고(故) 노회찬 의원이 그립다. 바꾸지 못하고 있으니 고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의 시대가 싫은 것이다. 지금의 변화보다 예전에 자신들만 누렸던 기득권과 편안하고 풍요로운 물질주의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놈의 고착에 갇혀 있을 셈인가?
지금 가톨릭교회는 40일 동안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행하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주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시기이다. 회개는 ‘길을 바꾸다.’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신앙인들이 고착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 좀 진실해지자. 좀 더 성숙해지자. 언제까지 어린 아이들이 토라져서 싸우는 것처럼 등지고 살려는가? 좀 솔직해지자. 그래서 우리의 고착을 끝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