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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영암 신북성당 주임신부] 이해관계를 벗어나려면
2019년 03월 08일(금) 00:00
우리는 요즘 언론을 통해 청년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들의 취업이 어려운 것일까? 그런데 청년들의 실업 소식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신입 사원 대부분이 채용 비리로 드러난 강원랜드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공공기업의 채용에 있어서 청탁과 부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다. 이 사건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청년 실업은 중요한 사회 문제로 재인식했다. 관피아, 낙하산, 친인척, 지인, 압력, 부당 지시, 청탁, 알선 등의 관계들이 취업 준비하는 청년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채용 비리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손혜원 의원의 목포 구도심의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건물 매입’과 관련해 회자되는 ‘이해관계와 그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말에서 우리 사회의 채용 비리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관계는 서로 이익과 손해가 걸려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의 관계에서 단지 이익과 손해의 입장에서만 관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는 이해관계의 충돌에 직면하기 쉬운 직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찰, 변호사, 판사, 손해사정인, 정치가, 기술자, 경영진, 회자, 임원, 의학 분야의 과학자, 작가, 편집자 등이다. 그런데 나는 인간관계 안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어떤 한계에 있지 않고, 모든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의 충돌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이 이해관계의 충돌은 공정한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우리 사회를 불공정의 각축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공공기관의 취업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성실하게 준비한 청년들의 정당한 실력이 기관의 임직원이나 친인척 또는 측근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점수를 조작하거나 모집 공고를 위반하는 등 특정인을 선발하기 위해 규정까지 위반하면서 비리를 저지른 경우가 다수다.

어느 한 공공기관 채용 업무 담당자는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고득점이 예상되는 응시자들의 경력 점수를 하향 조정해 특정인을 채용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니 참담할 뿐이다.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는 이해관계는 물론 특권 의식과 기득권의 횡포라고도 할 수 있으며, 성실한 청년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적폐 중의 적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2017년 말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공공기관 채용 비리 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작년 말에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 전수 조사까지 이루어졌다. 지난 2016년 9월 시행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은 2018년 1월 시행령이 보완 수정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이해관계를 통한 부정 청탁과 채용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주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의 담판이 결렬되었다. 그 이유는 북한은 제재 해제를 원했고, 미국은 영변 핵실험장의 해체로만 만족하지 못해 합의가 불발되었던 것이다. 이 북미 정상 협상의 결렬 또한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내 삶의 자리라는 작은 것에서부터 국가 정상 간의 관계성까지 언제나 이해관계는 작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익과 손해의 시각을 벗어나 관계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은 없었다. 그 대신 예수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현하시면서 용서와 일치를 이루셨다. 예수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3)라고 말하시면서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공정하고 선한 관계성이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 기회 균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적폐 청산을 외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계성과 습성들이 이미 이해관계라는 족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득실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서로의 행복과 기쁨을 생각하면 어떨까? 이 노력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오로지 이익과 손해라면, 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