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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2019년 02월 13일(수) 00:00
[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불로불사(不老不死)는 인간의 오랜 숙원이다. 이를 갈구한 대표적 인물인 진시황제는 동남동녀 삼천 명에게 영약을 구해오도록 했으나 실패했다. 현대에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동일한 목적을 성취하고자 하는 과학자, 정치가, 종교인, 예술인 등이 있는데 이들을 ‘트랜스휴머니스트’라 부른다.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1957년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금세기 들어서는 인간의 감각, 지능, 수명 등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첨단 과학 기술 운동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의 목표는 기계와 인간의 융합을 통하여 극도의 효율성을 가진 사이보그, 즉 초인공지능의 기계 인간이 되는 것이다. 기억,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등 인간의 머리와 가슴에서 일어나는 의식, 감정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화학 물질의 작용으로 본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생명 활동은 코드와 정보 처리 기술로 다운로드와 업로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이보그는 600만 불 사나이, 로보캅 등의 공상 과학 영화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육체에 불만을 느끼고 과학 기술로 능력을 확장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표출한다. 일반인들도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임플란트나 틀니를 하고, 부러진 뼈에 철심을 박고, 심장박동기를 사용하는 등, 엄밀하게 보면 인간과 기계 융합의 보편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유물론적 종교라고 보는 것은 궁극적 목표가 육체와 기계를 융합하여 무한한 지혜와 정보를 소유한 불사의 존재, 즉 영생을 꿈꾸며 전통적 종교의 영역을 넘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알코어 생명연장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은 1972년에 미국 아리조나주에 설립되었으며 현재 200명을 웃도는 망자(亡者)들이 -196℃의 초저온 질소 탱크 속에 보관되어 있다. 일반적이고 상식적 개념으로는 법적 사망 선고를 받은 시신이지만 그곳에서는 ‘환자’라 부르며 전신 환자는 20만 달러, 뇌 환자는 8만 달러가 든다고 한다. 언젠가 해동될 ‘그날’이 오면 뇌 환자의 경우, 어떤 몸 위에 그 뇌가 얹혀져도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동일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이다.

2016년 졸탄(Zoltan Istvan)은 전쟁과 핵에 쓰는 비용을 수명 연장하는 연구에 쓰겠다며 미국에서 트랜스휴머니스트 정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다. 유전 공학, 나노 기술, 로봇 공학의 급진적 발전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때가 올 것을 기대하며 이렇듯 미국, 영국, 소련 등 여러 나라에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선악과를 따 먹고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첫 사람 아담에 이어 하늘까지 닿을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의 혼잡으로 실패한 노아의 후손 이야기가 나온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신이 되고자 하는 새로운 현대판 시도인 셈이다.

200년 전에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쓴 단편소설 ‘립 반 윙클’(Rip Van Winkle)이 생각난다. 립은 어느 날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사냥을 나섰다가 힘겹게 술통을 지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나서 노인 대신 술통을 지고 산속 동굴까지 왔다. 한 무리의 노인들 곁에서 술 몇 잔 얻어 마시다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사냥총은 녹슬었고 수염이 한 자나 자라 가슴을 덮었다. 마을로 내려온 그는 자신이 20여 년 전에 실종 처리되었고 아내는 진즉 죽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립의 인생 상당 기간 역시 실종되었고 그는 시집간 딸네 집에서 그럭저럭 살다 죽었다.

인간의 영혼을 배제하고 육체를 물질, 한물간 구시대의 기계로 보는 트랜스휴머니스트 입장은 립의 상황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과학 기술이라는 최신 술은 영생을 갈망하는 이들을 취하게 하고 달콤한 헛꿈을 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