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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일 광주백범기념관·(사)백범문화재단 이사장]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한 20년

2019년 02월 12일(화) 00:00
백범 김구 선생과의 만남은 1998년 어느 늦가을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가 서울에만 있었는데, 서울 기념사업협회 주최로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백범 김구의 겨레 사랑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전시회를 계기로 김구 선생과 전라도와의 인연, 김구 선생의 정치 후원금으로 광주 ‘백화마을’이 조성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인 김구 선생이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본 진정한 지도자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동포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 선생이 좋아서, 또 누군가는 우리 고장과 선생의 인연을 알려야겠기에 당시 전시회를 관람했던 지역의 원로들이 모여 ‘광주전남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를 만들었습니다.

1999년 6월부터 지금까지 김구 선생 사진 액자를 사무실에 모셔두고 살아온 지 벌써 20년입니다. 그동안 광주전남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는 지역민과 현충 시설을 기행했고, 청소년들에게 백범 일지를 기증했으며, 독립운동 자료 전시회도 개최했습니다. 2011년에는 사단법인 백범문화재단으로 다시 태어나 2015년 ‘백화마을’ 옛 터에 ‘광주백범기념관’을 건립하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광주백범기념관은 김구 선생 뿐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했던 일강 김철 선생과 백강 조경한 선생, 광주·전남 출신 독립운동가들도 조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진심은 모두 같기 때문입니다.

광주·전남은 의향의 고장답게 항일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광주에서도 3월 10일 1000여 명의 군중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기미년 광주에서 울린 만세 함성은 우리나라의 3대 만세운동 중 하나인 1929년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됐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 발전됐습니다.

올해 2019년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의 뿌리인 3·1 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또한 3·1 운동 정신에 따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100번째 생일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와 각계 사회단체에서 100주년 기념 사업을 성대히 추진 중입니다. 11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광주도 다양한 기념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결한 희생을 무릅쓴 선열들에 대한 기념 사업이 어느 때 보다 풍성하여 더없이 기쁩니다. 하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모 사업과 기념 사업에 대한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제 마음이 무거운 것은 올해가 지나면 이 기념 열풍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라는 식으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과 74년 전에 조국의 광복을 맞았습니다. 아직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며 결코 먼 옛날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 교육 과정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선열들의 넋을 기리자’고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늘 그때뿐이라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매년 3월 1일과 8월 15일이 되면 단골 화두였던 ‘독립과 선열들의 넋’을 100년을 계기로 잊지 맙시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광복을 경험하고 우리 민족의 분단을 직접 경험한 제가 부탁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김구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길동무가 됩시다.